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70 / 냉이

풀빛세상 2011. 3. 16. 17:50

 

 

 

 

날씨 맑게 개인 날, 아직도 꽃샘추위의 봄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였습니다. 살고 있는 집 가까운 곳, 마을의  한 귀퉁이에 광대나물의 흰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더듬거리며 찾아나섰습니다. 땅에 엎드려 열심히 담은 후 주변을 두리번 거려보니 밭귀퉁이에 냉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볕이 바른 곳이라서일까요? 그네들은 이미 꽃대를 올려 꽃을 피웠습니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아쉬워 잠시 냉이꽃에 사진기를 들이대었습니다.

 

냉이꽃을 눈여겨 본 적이 있는가요? 좁쌀만한 하얀 꽃들이 하늘을 향하고 있어도 한 번도 조심스레 눈맞춤을 해 준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 냉정하고도 솔직한 표현이 되겠지요.

 

'냉이' 하면 사람들은 우선 봄나물을 생각하고요, 냉이국을 끓여 맛볼 생각부터 하겠지요. 사람들의 식탁에라도 오를 수 있다면 그네들의 사명은 다한 것이고요, 혹시 밭고랑에라도 피었다면 냉큼 냉큼 뽑아서 밭귀퉁이로 내던져버리겠지요. 모진 목숨이라서 그곳에서라도 흙냄새를 맡을 수만 있다면 다시 실뿌리를 내려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이것이 야생에서 자라는 작은 풀꽃들의 운명이겠지요.

 

작고도 작은 냉이꽃을 들여다 보았을 때 그곳에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좁쌀 알갱이를 올려놓아도 될 정도로 작은 꽃송이 속에 정밀하고도 정교한 아름다움이 숨어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세상을 만났을 때의 숨막힘이 이런 것일까요? 세상에서 아름답다고 하는 그 어떤 꽃들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네들보다 더 아름다운 꽃세상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봄날의 태양 아래에 작은 꽃송이들의 재재거리는 합창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 않습니까? 이 작은 세상의 숨막힐 듯한 아름다움 때문에 야생화의 세상에 자꾸 빠져들게 되겠지요.

 

이 작고도 작은 세상이 주는 감동에 취해있는 동안 바깥 세상에는 너무도 충격적이고도 암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 엄청난 지진과 쓰나미가 몰려와 땅이 꺼지고, 건물들이 무너지고,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되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그 모습들을 너무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멀리 있는 우리들은 참 안됐구나 하면서 동정할지는 몰라도,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이미 넋이 빠져 나갔겠지요.

 

일본이라고 하면 세계에서 최고로 발달된 과학기술을 자랑합니다. 지진에 대한 대비도 철저하고, 건물들을 지을 때에도 첨단의 기술들이 동원되었겠지요. 그렇지만 쓰나미가 한 번 휩쓸어버리니 모든 것이 너무 처참하게 변해버렸습니다.

 

우리는 환경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하고 그리고 실천하자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환경파괴적인 삶을 버리지 못하지요. 이미 편리함에 길들여져 버린 우리들의 삶을 바꾸어서 일부러 불편하게 살 수는 없을 듯 합니다. 어느 한 두 사람이 작은 실천으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자연스러움을 거슬러 가는 거대한 파괴의 물줄기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곰곰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들의 파괴적인 지혜 앞에서 자연은 항상 무력하기만 합니다. 조용하고, 온순하고, 그럴 때마다 겁없는 사람들이 땅 속 깊은 곳에 빨대를 꽂기도 하고, 어머니인 대지의 속살을 무지막지하게 파헤쳐도 자연은 말없이 참기만 하지요. 그렇지만 한 번씩 자연이 그 아픈 몸을 뒤틀면서 으르렁 거리게 될 때마다 세상은 한 번씩 뒤집어지는 것 같습니다. 

 

냉이꽃, 정말 작지요. 그렇지만 이 속에 작은 우주가 숨어 있다고 하면 너무 지나치다고 말할까요? 세상 사람들이 작은 냉이꽃 속에 있는 소우주를 발견하고 경의를 표할 때쯤이면, 자연도 자연의 평화로운 얼굴로 우리들을 만나주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어야 사람과 자연이 서로를 감싸주는 평화로운 세상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너무도 소박한 풀빛세상의 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