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66 / 미국쑥부쟁이

풀빛세상 2011. 1. 14. 15:28

 

 

 

 

 

꽃들 중에 특정 단어가 앞뒤에 붙는 이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중 미국이라는 접두사가 붙는 꽃들도 여럿 있지요. 미국자리공 미국쑥부쟁이 미국외풀 미국까마중 미국물칭개 미국질경이 미국쥐손이 .... 그런데 다른 특정 나라의 이름이 앞에 붙는 것은 별로 없는데, 미국이라는 접두어가 붙은 풀꽃들이 제법 많이 있네요. 아마 미국이라는 나라가 하나의 커다란 대륙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와 물적 인적 교류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요?

 

미국쑥부쟁이입니다. 쑥부쟁이도 종류가 많다고 하지만, 미국쑥부쟁이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하늘이 높은 가을이 되면 들과 산귀퉁이에는 여러 종류의 들국들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얀색의 구절초, 은은한 보라빛 혹은 물색이 살풋 감도는 쑥부쟁이들, 그리고 노란색의 산국과 감국 등등이 산들산들 바람에 가벼운 몸을 까닥거리지요. 새벽에 이슬 머금은 꽃의 청초함, 파아란 하늘 아래에서 가녀린 몸을 까닥거리며 흔들리는 모습 앞에서는 누구나 소녀가 되고 소년이 되며, 시인이 되었지요. 옛날 이야기입니다.

 

반도의 산야(山野)에서 자생하는 들국들은 대부분 키가 웃자라지 않습니다. 아무리 위로 솟구쳐도 어른 허리춤에 맞추어 피겠지요. 그래서 비탈진 곳이 아니라면 허리를 숙여야 꽃의 향기와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러운 듯 하면서도 친근한 우리의 꽃이 되었겠지요. 그렇지만 제가 만난 미국쑥부쟁이는 그 높이가 사람의 키를 넘어섰습니다. 꽃대 역시 어른의 손가락 굵기보다 더 굵었습니다. 우람한 것이 무성하게 꽃들을 매달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위압감이 느껴졌습니다. 대륙의 꽃이기 때문일까요?

 

풀꽃이야기를 적어가면서 모든 사연들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적당한 내용을 찾지 못한 꽃님들은 제 컴퓨터의 창고에 차곡차곡 쟁겨지 있지요. 시간이 지나가면 저절로 잊혀지면서 내년 혹은 후내년을 기약하게 됩니다. 그런데 몇몇 꽃들은 저에게 계속해서 부담을 안겨줍니다. 빨리 꺼집어 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 중에 미국쑥부쟁이가 제 기억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생각하면 참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나라, 고마운 나라라는 뜻으로 미국(美國)이라고 하지요. 제가 고등학교 때에 어느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은 우리와 입장이 달라 쌀이 많이 나는 나라라는 뜻으로 미국(米國)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반미를 주장하는 일부 세력들은 속이는 나라라는 뜻으로 미국(迷國)이라고 한다네요. 요즘 들어 북한의 매체도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美國 米國 迷國....  이런 단어들 앞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봅니다. 초심의 중요성도 느껴봅니다. 아름다웠던 그 나라가 어찌하다가 이제는 '양키 고 홈'과 숱한 테러의 위협 속에서 시달려야 하는지요. 겉으로는 당당하지만 속으로는 움츠리고 쩔쩔 매는 거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아직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는데, 세계의 경찰국 미국의 피로한 모습을 접하게 되면서 아리는 마음을 어쩔 수 없네요. 숱한 나라들 중에서 그나마 미국과의 의리를 제대로 지키는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 밖에는 없다지요. 그동안 숱한 나라들을 원조했지만 그 중에서 고맙다는 인사를 아직도 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하지요. 그러다보니 이 사실 자체를 마음에 들지 않아 반미자주를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우린 그네들이 주는 밀가루와 우유로 배고픔과 영양의 부족을 해결했습니다. 그네들이 주는 옷으로 추위를 막았지요. 역사적 평가는 어떻게 할지라도, 그래도 그네들 중에 많은 분들이 정말 좋은 마음 착한 마음 진실된 마음으로 우리의 부모님 세대, 형과 누나들의 세대를 도와주었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지금은...... 세월탓인가요?

 

제가 마음이 복잡하다고 했지요. 요즘은 영화를 찍어도 반미를 앞세워야 하고, 글을 적어도 반미적인 내용이어야 한다고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여론의 손가락질과 돌멩이를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고도 합니다. 미국, 아름답고도 고마웠던 나라, 그렇지만 역사 속에 나타났던 제국의 함정을 피해갈 수 없었던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풀꽃이 무슨 죄가 있나요? 꽃들은 당당하고 아름답기만 한걸요. 지나치게 우람한 몸짓으로 산야의 들국들과는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씨앗 떨어진 곳곳마다 자리를 찾아 한 세월 아름답게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요. 이제는 우리의 풀꽃 목록에 이름 하나 추가시켰는데요. 풀꽃들의 이야기를 적으면서 따뜻하고 푸근한 마음이 될 때도 많지만, 때로는 아려드는 아릿함으로 몸살을 앓을 때도 있답니다. 아름다움이라는 말은 그 속에 아픔 역시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풀꽃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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