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65 / 오이풀

풀빛세상 2011. 1. 9. 17:42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그네들이 깔깔 웃으면서 맞이합니다. 앉을 자리를 정돈하고, 무슨 차를 마시겠느냐는 말에 거품이 일렁이는 카푸치노 한 잔을 시켰지요. 그리고 살아가는 가벼운 이야기들에 서로의 안부를 섞어 넣었습니다. 과거와 현재, 먼 곳과 가까운 곳, 그리고 각자 삶의 자리인 제주와 서울 그리고 유럽을 오가는 우리들의 대화 속에는 세월의 은은한 향내가 풍기는 것 같습니다.

 

오랜 친구들이지요. 정확하게 말하면 아내의 친구요, 아내의 친구이면서 동시에 남편의 친구들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공부할 때였지요. 멀리 제주도에서 올라왔다는 아가씨들 셋과 자연스레 익숙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네들 중 한 여인이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지요. 그 덕에 어느 순간부터 남자도 제주 사람이 되고 말았답니다.  

 

유럽 어느 곳에 살고 있는 누구네는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는데, 무척 인정을 받고 있는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네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서울에 올라와서는 우리들과 함께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얼굴이 해맑고 눈이 커다란 그네는 특이한 행동과 돌출되는 발언으로 가끔씩은 외계인이 되기도 했었지요.  그 후 독일로 들어가서는 다짜고짜 도예(陶藝)에 도전했답니다. 문턱이 높아 여간한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들어가기 어렵다는 대학에 지원을 했겠지요. 미술이나 도예에는 문외한이요, 말이 서툴어 몸짓언어로 통하는 생면부지의 동양 아가씨가 무턱대고 밀고 들어왔지만 그곳에서는 순순하게 받아준 것 같습니다. 아마 철학과 신학을 아우르고 있는 당당한 기세에 독일의 교수님들이 장래성을 보았겠지요. 우리 나라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지요. 온갖 고생을 다했지만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서 지금은 나름대로 자기의 작품 세계를 찾은 것 같습니다.

 

이제 그네도 오십의 나이에 올라섰겠네요. 그렇지만 지금도 좌충우돌한다는 그네의 이야기들이 슬핏 슬핏 들려올 때마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크크 웃어볼 뿐입니다. 그네의 작품 세계를 접해 보고 싶네요. 어떻게 그 속 붉음을 표현해 내고 있는지...... 어떻게 눈물과 웃음을 버무려서 하나의 세계로 표출해 내고 있는지.....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해있는지.....

 

오이풀입니다.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제주의 오름을 오르내리다 보면 햇살이 따스한 풀밭 위로 머리를 쑤욱 내밀고 있는 검붉은 색의 오이풀꽃을 만나게 됩니다. 생긴 것이 꼭 뽕나무의 열매 오디를 닮았고, 꽃은 꽃인것 같은데 꽃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듯 하기에 사진기를 들이댈 욕심을 버렸습니다. 그냥 스치며 지나칠 뿐이었지요. 그러면서도 아무런 미련도 없었습니다.

 

 

 

 

꽃친구님이 찍어 올린 사진을 보면서 담담하고 소박한 맛이 느껴졌습니다. 담담하고 소박한 것을 담백하다고 하는걸까요? 그렇구나. 저 꽃도 사랑받고 싶어하는구나. 저것에도 그네만의 아름다움이 있구나. 평범함 속에 감추인 열정이 살아서 숨쉬는구나. 하루는 그 꽃에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꽃이 피고 있었습니다. 아주 작고 작은 꽃들이 모이고 뭉쳐서 하나의 꽃송이를 이루고 있었지요. 그네들 중에 하나씩 둘씩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꽃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발견이었지요.

 

아무리 살펴보아도 오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왜 오이풀이라고 할까? 뿌리에서부터 잎과 꽃에서 오이냄새가 난다고 해서 오이풀이라고 합니다. 옛적 산과 들의 모든 풀들이 나물 바구니에 담겨졌을 때, 은은하고도 향긋한 오이 냄새가 솔솔 풍겼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코막힘이 심해서 여간한 것에는 냄새를 느끼지 못하는 제 코로는 아직 오이냄새를 맡아보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꼭 그 풀에 코를 갖다 대고 킁킁거려 보아야겠습니다. 정말 오이냄새가 나는지....

 

우리네 삶도 들여다 보면 각자의 꽃송이가 있겠지요. 평범하지만 각자 개성을 가진 나와 너가 만나 우리가 되고, 우리가 된 우리들이 다시 모이고 뭉쳐서 더 큰 꽃세상을 이루게 될 때, 세상은 더 밝아질까요? 더 아름다워질까요? 오이풀의 냄새가 날까요? 오늘은 은은한 오이풀의 냄새가 정신을 맑히는 것 같습니다.

 

꽃이 진 후의 모습이 꼭 소크라테스의 얼굴을 닮았습니다.

 

 

 

'풀꽃이야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꽃이야기67 / 설중동백   (0) 2011.02.14
풀꽃이야기 66 / 미국쑥부쟁이   (0) 2011.01.14
풀꽃이야기 64 / 물매화   (0) 2011.01.06
풀꽃이야기 63 / 배풍등   (0) 2010.12.29
풀꽃이야기 62 / 하늘타리   (0) 2010.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