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속의 이야기

풍경 속의 이야기 3 / 전쟁과 평화

풀빛세상 2011. 1. 26. 15:46

 

 

  

 

지난 주에는 한 주간동안 평화실천신학 세미나에 참석했었습니다. 평화란 무엇일까요? 평화라고 하는 가장 평화로운 단어를 앞에 두고도 우리의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은 삶의 현실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모순 때문이겠지요. 평화란 뭘까요? 한 권의 책으로 엮어도 그 주제를 결코 다 다루지 못할 것입니다.

 

오래 오래 전부터 국가에서는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할 계획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동안 미루다가 이제는 때가 되었는지 밀어부치고 있습니다. 원래는 안덕면 화순 앞바다 형제섬과 산방산이 마주보고 있으며, 굴곡진 용머리 해안이 바다를 향해서 달리고 있는 화순 해수욕장 앞바다에 건설될 예정이었습니다. 그 바다의 한쪽 귀퉁이로는 대평리의 깎아지른 절벽이 길게 길게 뻗어있고요, 다른 쪽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길 중의 하나인 사계리가 길게 뻗어있고요, 바로 그 옆에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이중 분화구인 송악산이 있지요. 새벽마다 형제섬의 일출을 찍겠노라고 사진작가들이 줄을 서고요, 올레꾼들의 입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냐고 탄성이 터지는 곳이지요. 세계적으로 얻기 어려운 이런 천혜의 풍경을 망가뜨리고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하느냐의 현실 앞에서 무척이나 속앓이를 했었지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갑자기 다른 곳을 물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지역에서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외에도 이런 저런 말못할 사정이 있지 않을까 추측할 따름입니다. 이곳 저곳 알아보던 중 갑자기 강정 앞바다가 가장 적당하다면서 그곳에 붉은 깃발을 꽂고 건설장비들을 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런 일에 지역사회가 발칵 뒤집어졌지만, 그곳에도 찬성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이 둘로 나누어져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이 둘로 나누어지고, 수백 년 전통 마을의 친척들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가족 내 형제들 사이에서도 원수 아닌 원수가 되어버렸답니다.

 

위의 사진은 강정마을 바닷가 끄트머리, 해군기지가 들어설 곳에 설치한 철구조물입니다. 사진의 한 중앙에 보이는 섬은 서귀포 앞바다의 문섬이고요, 그 옆으로 계속해서 섭섬과 새섬들이 자리를 자리하고 있습니다. 참 아름다운 곳이지요. 중문 관광단지와 서귀포항 그 중간에 있는 지역, 태평양에서부터 몰려오는 바람과 파도가 때로는 세차게 때로는 잔잔하게 부서지는 곳, 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하늘에 바닷새들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곳이지요.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온갖 종류의 산호들이 울긋불긋 찾아오는 사람들을 반겨준답니다.

 

 

 

 

제주, 정말 아름다운 곳, 정말 평화롭게 보이는 곳, 눈을 위로 들면 한라산이요, 아래로 돌리면 넘실거리는 바다가 보이는 곳,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에서는 고삐를 매지 않은 소와 말들이 뛰노는 곳, 그런데 역사를 알고 보면 결코 평화롭지 않았던 곳입니다. 화산재로 이루어진 지긋지긋한 돌밭, 몽고 200년 통치, 육지부 중앙정부의 끝없는 수탈, 일제시대의 최후 저항지로 히로시마에 원폭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섬 전체가 불바다로 변할 뻔했던 위태로운 순간, 그리고 인구의 20-30%가 살해당했던 4.3의 기억..... 그 후 제법 세월이 흘렀습니다만, 이제는 아름다운 풍광을 이용하여 돈 놓고 돈 먹겠다고 달려드는 탐욕의 손들과 환경 파괴의 현장들...... 평화와 아픔이 뒤엉키어 있는 곳입니다.

 

참 아이러니 한 것은요, 제주를 국제 평화의 섬이라고 지정했다네요. 그러면서 한쪽으로는 대양해군의 미래를 위해서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한다네요. 찬성과 반대를 떠나서, 이렇게 진행되는 현실이 갑갑하고 답답하고 멍해질 뿐입니다.

 

전쟁과 평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는 대립적이기는 해도 반대말은 아닙니다. 어쩐 일인지 어느 날부터 전쟁과 평화가 가장 짝을 잘 이루는 반대말이 되어버렸네요. 말이 좀 어긋나는 것 같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국가간의 전쟁만 전쟁이냐? 가장 큰 전쟁은 가장 가까운 곳, 가정에서 일어나지 않느냐? 어쩌면 가정보다 더 좁은 곳, 나의 마음에서부터 날마다 전쟁은 벌어지고 있겠지요. 

 

평화란 뭘까요? 꼭 필요한 것이지만 결코 이룰 수 없어 속앓이를 해야만 하는 단어가 아닐까요? 그래서 달마가 동쪽으로 갔을까요? 싯달타는 궁을 버리고 고해(苦海)의 바다인 속세를 찾아 떠났을까요? 예수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해골언덕(갈보리언덕)을 비틀거리면서 올라갔을까요? 어쩌면 그 평화를 이루겠노라고 옛날 진시황은 수백만의 젊은이들의 핏값으로 천하를 통일했고요, 알렉산더 징키스칸 나폴레옹 히틀러 등등 등등 수없이 많고 많은 영웅들은 말을 타고 온 천하를 휩쓸었겠지요. 땅의 평화를 이루어보겠노라고요.

 

아래는 반대대책위원회가 있는 곳의 벽화입니다. 언제쯤이면 저 곳이 아름답고도 조용한 그림들로 바뀔까요? 어서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기도할 뿐이지요. 전쟁과 평화, 영원히 풀리지 않을 대립각, 그러면서도 공존해야만 하는 참 아이러니한 세상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