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62 / 하늘타리

풀빛세상 2010. 12. 24. 11:23

 

 

 

 

 

하늘타리입니다. 그 열매를 하늘수박이라고도 하지요. 늦가을 담벼락이나 하늘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열매를 보면  참외와 비슷하기 때문에 하늘참외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만, 누군가 하늘수박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니 그렇게 부를 수밖에는요. 꽃도 열매도 모두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초여름 오뉴월에 피는 하얀 꽃을 찍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꽃술이 산만하여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반짝반짝 윤기가 나는 하얀색은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사진으로 찍으면 허옇게 나오기가 일쑤이고요, 또 꽃 핀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부분적으로 시들어가면서 갈색의 반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이것 저것 걸거적거리는 것이 많은 담벼락 위에 터억 자리를 잡았거나, 혹은 하늘에 대롱대롱 달려 있어 적당한 모델 찾기도 어렵습니다. 지난 초여름 꽃이 핀지 얼마 되지 않은 싱싱한 것을 찾아 겨우 몇 컷 얻었습니다.

 

하늘타리는 꽃도 꽃이지만 겨울철에 대롱대롱 하늘 높이 달려있거나 혹은 담벼락에 매달려 있는 노오란 열매를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제주도에서는 환경이 좋아서인지 몰라도 어디에서든지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차들이 지나다니는 대로변의 귀퉁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살았던 육지에서는 쉬이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어릴적에는 모든 것이 시골스러웠지요. 제가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이 아니라 요즘과는 달리 훨씬 여유로움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먹고 입는 것들이야 모두가 부족했었습니다. 바지 하나 혹은 털실로 된 쉐타 하나를 사면 헤어져서 더 이상 입을 수 없을 때까지 사시사철 입었습니다. 학교에 갈 때도 입었고, 밖으로 놀러다닐 때에도 입었고,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도 그 옷을 입은 채로 골아떨어졌습니다.

 

방학이 되면 애들은 아침밥을 먹기가 무섭게 밖으로 뛰쳐나가서 썰매를 탔고, 술레잡기 놀이를 했고, 산으로 들로 몰려다녔습니다. 심지어는 한밤 중에도 술레잡기를 한다면서 이곳저곳 숨어다니기도 했었지요. 그러다가 똥물통에 발이 빠져들어가는 경험도 했습니다. 똥물에 빠지면 떡을 해 먹여야 오래 산다고도 했지요. 그 다음날 어머니는 웃으시는 얼굴로 얼른 쌀 한 됫박 퍼내어 떡을 만들었습니다.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는 들판에서 쥐불놀이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마을 전체가 낮밤 구분없이 애들의 놀이터였지요. 그 때의 추억들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때에 비하면 요즘 애들도 어머니들도 너무 삭막한 것 같습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애기들을 위해서 엄마는 태교를 해야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머리에 좋다는 우유와 음식들을 먹이기 시작합니다. 아직도 옹알거리는 애들을 위해서 영어 테이프가 계속 돌아가고요, 이제 막 혀가 풀러 엄마 아빠를 부르기 시작할 즈음에는 혀꼬부라진 발음으로 마더 파더라고 외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불안감이 어머니의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하지요.

 

조금 자라면 학원에 다녀야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태권도 학원, 예능을 위해서는 피아노와 그림 학원, 성적을 위해서는 보습학원(?) 등등 서너군데를 전전하다가 저녁이 되어 겨우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렇게 키웠으면 모두가 천재가 되었어야만 할 것 같은데, 어머니의 마음과 같이 자라주지를 않으네요.

 

애들의 머리가 조금 커지기 시작하면 모두들 컴퓨터 앞에 앉기 시작합니다. 원래는 정보의 공유와 학습을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현실은 값비싼 게임기로 전락해버린 듯 합니다. 온갖 부작용들이 나타나지만 시대의 대세는 어쩔 수 없게 되었다지요. 몇 년 전 집안에서만 뱅뱅거리는 애들이 딱해서, '야! 밖에 나가서 놀다 오라'고 외치자 애들이 힘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밖에 나가도 애들이 없어요.'

 

어릴 적 애들과 들판을 뛰놀다보면 어느 귀퉁이에선가 하늘타리 열매가 보입니다. 심심하던 차에 신기한 열매가 나타났으니 그것도 애들에게는 커다란 수확이 되었지요. 전쟁놀이를 하던 애들에게는 그것이 승전 기념물이기도 했고요. 집에 갈 때에는 어디에 쓰는지도 모르지만 대롱거리는 열매를 귀한 보물 다루듯이 하면서 손에 들었지요. 그러면 어머니는 처마 밑 빈 자리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겨우 내내 시들고 말라 새봄이 올 때 쯤이면 바삭해지고 말았지요. 그러면 밖으로 내다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께서 노오랗고 진득한 속즙에 달걀 노른자를 부은 후 손가락으로 휘휘 젖더니 꿀꺽 삼켰습니다. 약으로 드신 게지요. 그래서 어린 저도 '아하! 어른들의 약으로 쓰이기도 하는구나' 이렇게 알게 되었습니다. 관심을 갖고 찾아 검색해 보니 하늘타리의 뿌리와 열매 그리고 씨앗까지 약재로서 다양하게 사용되네요. 요즘같이 약이 흔한 시대에는 별관심없이 지나치며 지나가는 나그네의 향수만 북돋우겠지만, 옛날에는 아주 귀한 약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늘타리, 하늘수박, 옛 추억이 새록거리기에 요즘도 관심있게 찾아봅니다. 무엇보다 하늘에 대롱거리며 달려있는 황갈색의 동그란 열매는 어린시절 함께 놀았던 형들과 친구들과 동생들의 얼굴들인듯 합니다. 그때의 그 목소리들이 바람결에 스치며 지나갑니다. 다들 잘 살고 있는지..... 훗날 우리의 애들이 어른이 된다면 무엇을 추억할까요? 무엇이 그리움의 매개체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