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64 / 물매화

풀빛세상 2011. 1. 6. 16:08

 

 

  

 

 

야생의 꽃을 찍다 보면 행복하고 푸근할 때도 많지만, 때로는 너무 너무 아쉬울 때도 많이 있습니다. 작은 꽃 속의 신비가 보이고, 그 모습을 제대로 담았을 때의 흥분이 있지요. 그 설레임 때문에 사람들은 꽃을 찾아 산과 들과 해변으로 그리고 험한 비탈길을 오르내리기도 하겠지요. 그렇지만 열심히 담아왔지만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에는 적잖이 실망하게 됩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 볼 때, 제법 많은 꽃들을 만나기는 했지만, 꼭 만나고 싶었지만 만나지 못한 풀꽃들이 더 많았습니다. 늘 풀꽃들만 찾아다닐 정도로 시간의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고, 틈을 만들어 달려가야 하는데, 그 틈이라는 것이 아무 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루 이틀 기다려 떠날 수 있으면 참 다행이겠지만, 어떤 때는 한 주 두 주, 심지어는 한 달 두 달을 기다리다가 철을 넘겨버릴 때가 많았습니다. 

 

세월이라는 것이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야생의 꽃도 마찬가지이겠지요. 피는 계절이 있고, 장소가 있고,  아침에 피는 꽃, 한낮에 피는 꽃, 저녁에 피는 꽃들이 있고, 맑은 날의 꽃이 있으면 흐린 날의 꽃도 있습니다. 이렇게 제각각의 꽃들이 한반도의 산하에 수천을 헤아리는데, 제가 어찌 이 모든 것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중에서 아주 일부분만 겨우 겨우 만났다고 해야겠지요. 아마 눈요기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만났어도 저의 부족한 실력으로 망쳐버린 작품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 중에서 가을의 여왕 물매화도 무척이나 아쉬운 모델입니다. 한국에는 물매화와 애기물매화 2종이 고산지대의 양지쪽 습지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그 둘이 어떻게 다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어느 순간 그 차이를 알게 될 때가 오겠지요.

 

지난 해(2010년) 8월 20일이었던가 봅니다. 배낭에 카메라 담고 한라산 윗세오름을 올랐지요. 항상 하는 습관대로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하면서 여러 종류의 꽃들을 찾아 담았습니다. 그러다가 높은 곳에 있는 습지에는 무엇이 있을까 살펴보니 물가에 맑고 새하얀 꽃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아! 눈이 밝아지면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이게 무슨 꽃일까? 이게 물매화라고 하는구나. 이 순백의 아름다운 꽃을 여기에서 만나다니....

 

정성을 다해서 담아왔습니다만, 집에 들어와서 확인해 보니 온통 허옇게 변해 있었습니다. 제대로 찍힌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태양빛이 강한 한낮에 반짝이는 흰꽃을 담는다는 것이 저에게는 무리였던가 봅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카메라의 측광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었기 때문이었지요. 만약 지금 그 꽃을 다시 만난다면 그때보다는 조금 더 잘 담아 올 수는 있겠지요.

 

물매화를 다시 만나고 싶은 욕심은 있었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그 산으로 오르지 못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제주의 오름을 오르다가 늦은 철에 아직도 피어있는 물매화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성을 다해 찍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가 원하는 모델, 활짝 피었고, 왕관의 모습이 선명하게 도드라지며, 적홍색의 암술까지 자태를 드러낸 모습을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꼭 좋은 모델 만나야지. 제대로 찍게 되면 풀꽃이야기를 담아야지..... 해를 넘기고 말았습니다.

 

신년을 맞이했습니다. 온통 흐릿하고 찌뿌둥한 하늘, 수십 년만의 한파요, 폭설이라는 뉴스가 매일 들려옵니다. 환경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개발에만 열을 올리는 인간들의 탐욕에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걸까요? 이러다가 더 큰 재앙이 몰려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찾아들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자나깨나 불조심'이라고 했는데, 앞으로의 구호는 '자나깨나 환경보호'라고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와 함께 슬픈 '늬우스'들이 저의 정신을 멍멍하게 합니다. 엊그제부터 들려온 소식인데요, 서울의 큰 교회에서 부목사들이 담임 목사를 폭행했다고 합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 Elder의 적을 두고 있는 교회라고 하지요. 한국에서 영어로 설교해도 통역이 필요없는 교회라고 하지요. 옛부터 장차관, 국회의원, 장군들, 기업의 회장님들이 줄을 잇는 교회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다던 하늘의 그분을 알기나 할까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다는 말씀의 엄중함을 제대로 깨닫기나 할까요?

 

그리고 그들은 높은 산 맑은 물 가에서 순백으로 피어오르는 물매화에 대해서 알기나 할까요?

물매화, 그 꽃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맑음과 고움으로 살지는 못해도, 맑음과 고움을 마음에 담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살지 못해서 가끔씩은 힘들어하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신년을 맞이하여 다시금 맑음과 고움을 생각하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