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59 / 망초와 개망초

풀빛세상 2010. 12. 11. 13:33

 

 

 

 

우리 민족을 백의의 민족이라고 하지요. 그 뜻은 흰 옷을 즐겨 입는 민족이라는 뜻이겠지요. 짧은 역사 지식으로 잘 알 수는 없지만 우리 민족의 뿌리가 되는 부여시대부터 흰 옷을 즐겨 입었다고 하니까 그 역사와 유래가 무척 오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흰옷을 입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제 기억과 추억 속에서 마을의 어르신들은 누리끼리한 흰색의 무명옷을 입고 밭으로 논으로 일을 다나녔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는 그 옷을 정성껏 빨아 얼룩물을 제거하고 밤에는 방망이질과 다리미질로 빳빳하게 했지요. 그 외에 마을에 초상이 나면 어르신들은 흰옷을 입고 조문을 다녀오셨습니다. 흰옷은 평상복이면서 동시에 예복이기도 했습니다.

 

백의민족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고단하고도 슬픈 민족이라는 감상에 젖게 됩니다. 동시에 착하고 어진 민족이라는 생각도 떠오르게 됩니다. 저만의 느낌은 아니겠지요. 옛부터 흰 색을 좋아했었고, 수 천년 역사를 통해서 수없이 외침만 받았지만 단 한 번도 타 민족을 침략하지 않았다고 역사책에서 배웠습니다. 그러면서도 단일민족으로 수천년 이 강토를 지켜왔다는 참으로 소박한 자부심이 있지요.

 

그런데 요즘은 이런 자부심마저 부정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성씨를 보아라. 얼마나 혼혈이 많이 되었냐고 합니다. 더우기 요즘은 국제화 시대요 다문화 다민족 시대에 단일민족의 신화를 깨라고도 말을 합니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만, 이런 당당한 외침 앞에서 자꾸 마음이 저려옵니다. 그 무엇보다 한반도의 허리를 잘라 남북한으로 갈라선 우리 민족이 혹시라도 영원히 등돌리며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찾아 올 때도 있습니다. 왜냐고요? 남쪽 북쪽 마음을 열고 휴전선의 철책을 걷어내야 통일이 되는데, 저 북쪽의 지도층에서 갑자가 중국쪽으로 국경을 개방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중국은 이렇게 하겠지요? 겉으로는 아고 골치야 하면서도 슬그머니 소수민족 정책으로 포용해 버린다면 돌이킬 수 없지 않을까요? 그러면 북한 주민들도 뿌리를 잃어버린 연변족의 형제들 신세가 되지 않을까요?

 

백의민족 단일민족이란, 우리의 뿌리를 이루는 상징성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멀리 먼 곳 이방의 땅에서 서럽게 힘들게 살아도 우리에게는 어머니의 나라  아버지의 나라, 뿌리가 있다는 희망과 자부심만으로도 지켜야 할 소중한 상징의 언어가 아닐까요? 수없이 혼혈이 되고 또 되어 몇 천년 후에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된다고 할지라도, 한반도 백의민족이라는 의식만을 꼭 붙들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망초와 개망초가 있습니다. 들판 빈터 어디에서든지 잡초로 무성하게 자라나면서 하얀 꽃을 피웁니다. 순하고 순한 풀입니다. 여리고도 여린 풀꽃입니다. 억세지도 않고 가시도 없는 것이 키만 희멀겋게 자라납니다. 뿌리가 약해서 손으로 잡아당기면 쑥쑥 뽑히기만 하고요, 낫을 휘두르면 모가지부터 댕강댕강 잘려 나갑니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을 못하고, 슬퍼도 슬프다고 말을 못하면서도 뒤돌아 보면 어느 틈엔가 어딘가에 무성하게 자라면서 서럽도록 하얀 꽃을 피우고 있지요.

 

망초는 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고요, 그나마 개망초는 꽃다운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제법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개망초를 주제로 시를 읊는 분도 있고요, 노래로도 불려지고요, 그림의 소재가 되기도 하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개망초를 보면서 계란후라이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 꽃을 계란꽃 혹은 계란후라이꽃이라고도 불러준답니다.

 

왜 망초 혹은 개망초라고 했냐고요? 이 풀꽃은 북아메리카 원산지의 귀화식물로 우리 나라가 개화를 하여 본격적으로 외국의 문물이 밀려올 때 어느 틈엔가 끼어 왔다고 합니다. 특별히 철도변을 중심으로 퍼진 것으로 보아 철도침목을 수입할 때 묻어온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한답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묘한 것이, 조선이 망하고 일본에게 강제로 합방될 시점과 겹쳤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풀꽃을 보면서 울분을 전이시켰다네요. 이 망할풀아, 나라가 망할 때 들어온 풀아, 네놈을 보기도 싫어. 이렇게 말입니다.  

 

순하고도 순하고, 착하고도 착하고, 여리고도 여린 이 풀꽃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만, 가난하면서도 순수했던 우리 민족의 애환을 짊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록 귀화식물이기는 하지만 우리 민족을 가장 많이 닮아있는 것은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그와 함께 나라와 민족 그리고 뿌리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풀꽃들을 보면서도 나라와 민족과 뿌리를 생각하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