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60 / 지란지교를 꿈꾸며

풀빛세상 2010. 12. 13. 15:34

 

 

  

 

 

바람이 불고 날씨가 쌀쌀했던 늦가을 어느 날 햇살이 따스한 벤치에 이파리 하나가 내려앉았습니다.

참 편안해 보였습니다. 쓸쓸해 보이기도 했고요. 속으로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 좀 여기에 잠시 쉬었다 가면 안 될까요?

날은 춥고 바람은 부는데, 갈 길이 멀거든요.

그래요. 얼마든지 쉬었다 가세요.

 

십년지기 친구가 멀리 이사를 갑니다. 만난지 꼭 십년이 되었네요. 이삿짐 꾸린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섭섭했는지요. 가장 가까운 사이였는데. 어이~ 거기 어디~ 모(뭐)하메~ 어서 와~ 기다려~ 알았어~ 지금 가고 있어~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짧으면서도 편안했습니다. 가끔씩 사진기를 메고 오름에도 오르고, 야생화도 찍고, 차를 마시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들도 나누었지요. 별스런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래도 편안했습니다.

 

친구와 관련된 여러 단어들을 찾아봅니다. 죽마고우, 관포지교, 금란지교, 단금지교, 막역지우, 문경지교, 백아절현, 지기지우 등등 참 많이 있습니다다만, 그 중에서 지란지교(芝蘭之交)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뜻풀이를 보니 '지초와 난초 같은 향기로운 사귐.  벗 사이의 맑고도 고상한 사귐'이라고 하네요.

 

그네 부부와 우리 부부가 마주 앉아서 식사를 했습니다. 이제 친구는 이삿짐 담아 싣고 멀리로 가야 합니다. 아마 앞으로는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가끔씩 만나기야 하겠지만, 남은 인생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런지요. 그동안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벤치가 되어주기도 했고, 쉼터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네는 그곳에,  우리는 이곳에, 서로 또 다른 친구들을 찾아 만나게 되겠지만 그래도 생각이 많이 날 것 같습니다.

 

지란지교를 꿈꾸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