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58 / 인동초

풀빛세상 2010. 12. 10. 15:42

 

 

  

 

12월의 첫째 주 월요일 우도에 다녀왔습니다. 섬 속의 섬 우도, 소가 앉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우도(牛島)라는 이름을 얻었지요. 그곳은 두 번을 다녀왔지만, 처음에는 섬을 한 바퀴 돌아나오는 순환버스를 탔었고, 두번째는 교회의 승합차에 어르신들을 모시고 들어가서 비잉 돌고 나왔기 때문에 섬 전체를 찬찬히 살피며 구경하리라는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우도 올레길이 개설되어 호기심도 있었고요. 배 안에는 배낭을 메거나 혹은 등산복을 챙겨입은 사람들이 제법 복작거렸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바다에 풍랑주의보가 내려 두어 시간 바쁘게 걸어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급하게 돌아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곳에는 아직도 꽃이 있었습니다. 연분홍빛이 감도는 갯쑥부쟁이와 샛노란 감국의 꽃들이 세찬 해풍에 온 몸을 바르르 바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원래 늦가을 바닷가 동네에서 피는 꽃들이라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짠바람이 싫지는 않겠지요. 지나가는 나그네들인 우리들은 옷깃을 세우고 몸을 움츠리며 동동거리지만, 그네들은 살맛 났노라고 희열의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살아온 삶의 환경이 다르고, 기준이 다르겠지요.

 

그곳에서 철늦은 인동꽃을 만났습니다. 이웃들은 모두 회갈색으로 온 몸이 삭아져가는 찬겨울에도 양지바른 곳을 찾아 싱싱한 줄기와 검은빛이 도는 초록의 잎으로 겨울을 견딘다고 해서 인동(忍冬)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상징이 되어 더욱 유명해진 풀꽃입니다. 원래는 5,6월에 피는 꽃들인데, 가끔씩은 늦가을 초겨울 햇살이 아늑한 언덕에서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인동, 인동초, 인동덩굴(넝쿨), 겨우살이덩굴 등등의 이름과 함께 금은화(金銀花)라고도 불려집니다. 아래의 사진에서 보듯이, 처음에는 흰꽃으로 피었다가 점점 노란색으로 변해가지요.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살아온 세상이 아쉬운 듯 시든 꽃잎을 아래로 툭 떨구고는 한 세월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까아만 씨앗을 남긴답니다. 

 

어릴 때 길을 가다가 심심하면 주변에 피어있는 인동꽃을 쑤욱 뽑아 입으로 쪽 빨면 입안에는 꿀물의 향기가 그윽했었지요. 사탕 한 알이 그토록 귀했던 그 시절이 가끔씩은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참을 인(忍) 글자를 가진 꽃, 이것 저것 참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살아오면서 힘든 순간들이 참 많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어려울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인생은 파도타기요, 아리랑 고개를 오르내리는 과정이요, 좋은 일이 있을 때 더욱 겸손하라고도 하고요, 어려울수록 맑은 하늘을 우러러 보라고도 하지요. 눈물과 웃음이 쉼없이 교차하는 이 세상에서 사랑 애(愛) 글자만큼 귀한 것이 참을 인(忍)이 아닐까 곰곰 생각해 봅니다.

 

애들의 수능성적이 발표가 되었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성적들이 더 나쁜지 '에고~ 힘들어' 하면서 축 늘어지는 아들을 봅니다. '이래서 애들이 자살하는가 봐요'라고 중얼거리는 아들의 말을 들으면서, '그래, 이제 너희들도 거친 인생광야의 입구에 들어섰구나' 중얼거려봅니다. '아빠도 엄마도 다 그 과정들을 거쳐서 오늘까지 왔단다. 참고 또 참으면서, 때로는 헛웃음이라도 웃어가면서 오늘까지 오지 않았겠니. 그래도 돌아보니까 그 과정들이 헛된 것은 아니었구나.....'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환경이 어렵고 거칠수록 고운 때깔을 내며 향기가 찥어가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