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56 / 털머위

풀빛세상 2010. 12. 4. 12:51

 

 

 

 

 

 

추운 겨울이 지나고 들판의 보리 알갱이가 땀방울을 뻘뻘 흘리면서 익어가는 오뉴월이 되면 시골 애들의 볼에는 어느 누구 예외가 없이 허연 마른버짐이 까칠하게 자리를 잡았지요. 먹을 것이 부족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노루 새끼 같았던 아이들은 씩씩하게 산과 들을 뛰놀면서 놀았답니다.

 

마을에 이런 아이가 있었지요. 봄이 되면 봄을 타고, 여름이 되면 더위를 먹었고, 가을이 되면 먼 산을 바라보며 분위기에 취했고, 추운 겨울이 오면 친구들과 함께 썰매를 탓지요. 봄을 탄다는 말은 결코 좋은 뜻이 아니랍니다. 추운 겨울에 잔뜩 긴장했던 신체가 따뜻한 봄이 되면서 나른하게 풀어지면, 아이의 입맛도 떨어지고 소화력도 약해져서 몸도 마음도 축축 처지기만 했다는 뜻이겠지요. 거친 보리밥과 푸성귀 반찬 외에는 없었던 그 시절이기에 부모님의 마음도 무척 아팠을 것입니다.

 

이럴 때 아이의 어머니는 밭 귀퉁이에 무성하게 자라는 머위를 싹둑 싹둑 잘라와 푹 삶은 후 넓고 검푸른 이파리는 쌈으로 올렸고, 토실한 줄기는 된장 식초 깨소금 등등의 양념을 넣어 조물조물 무쳤지요. 쓴맛을 중화시키기 위해서 설탕도 한 숟갈은 첨가했었답니다. 희안하게도 입맛이 돌아오고 소화도 잘 되어 한 철을 지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답니다. 어디 그 아이 뿐이었겠습니까? 가난했던 그 시절에 머위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식욕을 돋구고 소화력을 활성화시키는 최고의 건강식품이었습니다.

 

늦가을 제주에 오면 털머위라는 노오란 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 반찬거리가 되는 머위와는 완전히 다른 식물이지만 전체적인 모습과 특히 커다란 초록의 이파리가 머위와 비슷하다고 털머위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 같습니다. 노오랗고 활짝 벌어진 꽃이 참 아름답지요. 보고 있노라면 마음도 몸도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습니다.

 

털머위는 봄 여름 오랫동안 기다려야 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지에서 내려온 분들이 머리를 갸웃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왠 머위를 길가에 이렇게 많이 심어 놓았을까? 아무리 기다려도 넓고 시퍼런 이파리 밖에는 없었는데, 대부분의 꽃들이 하나씩 둘씩 떠나가는 쓸쓸한 늦가을이 되면 갑자기 땅에서 꽃대가 쑥쑥 올라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노란 꽃들을 토해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상은 털머위의 환한 꽃들로 웅성웅성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노오란 털머위 꽃을  보면서 어릴 적 봄을 타면서도 씩씩하게 놀았던 고향 마을 아이들의 추억들을 떠올려 봅니다. 찬 바람이 불고 있는 이 세상에서 꿋꿋하고도 밝게 잘 살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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