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55 / 광대나물

풀빛세상 2010. 11. 30. 19:15

 

 

   

 

 

 

 

어릴 적 손 호호 불던 추운 겨울이 지나가면 양지 바른 밭 귀퉁이에서는 작은 풀꽃들이 하나 둘씩 기지개를 켜면서 나왔지요. 어~ 추워 하듯이 몸을 잔뜩 낮춘 채로 말입니다. 그 중에 제가 살던 마을에서는 뱀풀 혹은 뱀꽃이라고 불렀던 작은 풀꽃이 있었지요. 왜 뱀풀이라고 할까? 왜 뱀꽃이라고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작고 귀여운 꽃이 뱀을 닮아 있는 것도 아니었고, 뱀이 먹는가 살펴봐도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글쎄요. 봄철 들판에 나오는 무른 딸기를 뱀딸기라고 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낯설고도 무서운 이름으로 가르쳐 주었을까요?  

 

광대나물입니다. 나물이라는 말이 붙었으니 먹어도 된다는 뜻이겠지요. 옛날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는 이른 봄 들판에 자라는 이런 풀도 뜯어다가 죽쑤는 솥에 넣었을까요? 아니면 작은 대나무 소쿠리에 담아와서 살짝 데쳐서 나물로 해 먹었을까요? 요즘과 같이 먹을거리가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는 한 옛날 전설처럼 들립니다만, 비만과의 전쟁을 치뤄야할 정도로 영양과잉이 되어버린 현대인들이 웰빙 식품으로 다시 찾아 식탁 위에 올릴 날도 멀지 않았겠지요.  

 

날씨 쌀쌀한 초봄에 피는 꽃이지만 남녘에서는 11월부터 다시 피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초겨울의 날씨가 초봄의 날씨와 비슷하기 때문이겠지요. 아름답거나 화려하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천대를 받는 야생의 풀꽃들일수록 환경에 적응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철을 맞추어 피기보다는 환경만 비슷하게 맞으면 일단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어 자손을 번식시켜야 합니다. 그것마저도 안 될 때에는 꽃을 피우지도 않은 상태에서 자가수분을 해 버린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폐쇄화라고 한다지요. 그리고 환경을 탓하지 않고 아무리 척박해도 생존의 본능을 발휘합니다. 이런 것을 야생성이라고 하겠지요.

 

야생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마음 한 구석이 쏴해집니다. 제가 야성성이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고, 아무리 거칠은 상황이 닥쳐와도 꿋꿋하게 잘 버티는 이웃들을 보면 부럽기만 합니다. 음~ 야생성이라......

 

광대나물, 이름이 참 특이하지요. 왜 사람들은 이 꽃을 보면서 광대를 떠올렸을까요? 뭔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데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어떤 분이 이 사진들을 보면서 '광대의 춤판이 벌어졌다'는 표현을 남겼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정말 그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고 소박하고 평범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심한 눈길로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오밀조밀한 것이 정말 예쁘네요.

 

야생화에 관심을 가지고 똑딱이 카메라를 사용할 때 렌즈 교환식 카메라를 가진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나도 훗날 이 작은 꽃을 담아봐야지 다짐하고 또 했었지요.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만, 이제 소원을 풀었습니다. 대부분 땅을 기면서 자라거나, 혹 자세를 꼿꼿하게 세운 것들이라도 한 뼘을 결코 넘기지 않기 때문에 낮은 자세로 엎드려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런 풀꽃의 친구가 될 수 있겠지요.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사진을 찍어보니 정말 예쁘네요. 정말 정밀하기도 하네요. 아~ 하면서 앙증맞게 입을 벌린 모습, 공통적으로 찍혀있는 붉은 점들, 윗쪽으로 총총하게 나 있는 붉은 잔털들, 아랫쪽으로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 잎술.....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그리고 좁고 길다란 목 아래쪽에는 꿀을 저장해서 곤충들을 불러모으지만, 저 대롱이 너무 가늘고 깊기 때문에 찾아온 손님들이 꿀물을 쉽게 퍼가지 못한답니다. 안에서부터 꿀물의 향기가 솔솔 풍기어 나면 허기진 곤충들이 한 입 마시고 싶어서 자꾸 작은 몸을 들이 밀겠지요.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꽃가루가 온 몸에 묻게 될 것이고, 이 꽃 저 꽃 옮겨다니는 중에 꽃가루받이가 일어나겠지요. 알면 알수록 참 신비로운 풀꽃들의 세상입니다.

 

 

아래 사진은 자주광대나물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없었는데 국제화 시대를 맞이해서 찾아온 귀화식물이랍니다. 아마 사료들 틈에 끼어서 왔을 수 있겠지요. 아직은 흔하지 않아 특정 지역에서만 보이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 만날 수도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꽃은 우리의 것과 비슷하지만 위로 쑤욱 자라는 식물의 당당한 모습은 아무래도 낯설기만 합니다.

 

 

 12월 중순 눈 내린 날에 피어있는 광대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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