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54 / 산국

풀빛세상 2010. 11. 25. 15:01

 

 

  

 

뭍으로 올라갔을 때 친구네 집 식탁 위에는 여러 가지 말린 꽃들을 담아놓은 투명한 유리병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친구의 부인이 꽃차에 일가견이 있어 올 한 해 동안 부지런히 꽃을 따고 말려서 준비해 놓은 것들입니다. 친구의 부인, 우리들 세계에서는 서로를 높여 사모님이라고 부르지만 공식적인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네요.

 

구절초, 석류, 달맞이, 감꽃.... 그리고 노오란 색의 산국도 있었습니다. 이야기 중에 틈틈히 이런 저런 차들을 내오면서 맛을 음미하라고 합니다. 꽃들이 활짝 피어버리면 향기가 날아가버리기 때문에 덜 핀 것들을 따서 말려야 한다고 설명을 하면서, 곧 다른 분과 공저로 꽃차에 관한 책이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대화 중에는 풀꽃들의 향기가 솔솔 풍기어 났겠지요.

 

그렇지만 커피와 같은 강한 맛에 길들여져 있는 저의 혀로는 꽃차의 은은한 맛이 쉽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조심스럽게 코로 그 향을 맡아보려고 하지만 그 향의 그윽함이 밋밋하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속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 역시 강하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버렸구나. 내 삶의 모습도 다르지 않겠지. 한 알 먼지도 멀리하고 하늘에서 내리는 맑은 이슬을 머금고 피어나는 꽃들의 향기에 쉽게 취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가을의 들과 산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산국입니다. 이보다 조금 꽃송이가 큰 것을 감국이라고 부른다지요. 꽃차를 즐기는 분들은 덜 핀 꽃송이들을 따서 말린 후 산국차 감국차로 만들어 마시면서 가을을 느껴보겠지요. 이런 차를 마시면 마음 속으로 가을이 들어올까요? 낙엽 떨어지는 쓸쓸한 가을, 따스한 꽃차를 나누어 마실 때 우리의 마음은 따듯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꽃차를 좋아하신다는 분들은 들판의 꽃들을 몽땅 따지는 마시라고요. 계절의 향기를 나비와 벌들과 풍뎅이들과 나누어야 하지 않겠냐고요. 깊어가는 가을에 아름답고도 풍성한 꽃세상의 그윽하고 담담한 향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