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53 / 덩굴용담과 멧용담

풀빛세상 2010. 11. 23. 18:44

 

 

 

  

 

용담(龍膽)이라는 풀꽃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용의 쓸개라는 뜻이요, 뿌리가 무척 쓰며 한약재로서 사용된다고 합니다. 용담도 검색해보니 칼용담 큰용담 진퍼리용담 가는잎용담 비로용담 등등 열 대여섯 종류가 나오는데, 저는 아직도 만나본 것이 몇 종류 없어서 감히 뭐라고 말할 수가 없네요. 그 중 제가 만난 것이 있다면 눈이 녹은 봄철 한라산 높은 곳에서 자라는 흰그늘용담과 늦가을 모든 꽃이 다 져버린 후에 홀로 보랏빛을 드러내는 멧용담 정도요, 지난해 오름길 곁에 가녀린 덩굴이 뻗어가는 덩굴용담 정도이지만, 아쉽게도 덩굴용담은 꽃을 담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꽃 담아보리라 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는지 철이 지나가버렸습니다.

 

아빠, 목표는 있고 수단이 없는 사람을 백수라고 하고요, 목표도 없고 수단도 없는 사람을 폐인이라고 한데요. 수단은 있지만 목표가 없는 사람을 학생 혹은 회사원이라고 하고요, 목표도 있고 수단도 있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래요. '그러면 너희는 어디에 속하냐?' '저희들은 당연히 폐인이지요. 이제 수능도 끝나버렸겠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를 애들은 낄낄 웃으면서 전해줍니다. 수능 시험 끝난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애들은 벌써 풀어져 버렸습니다.

 

집에 작은 아들이 빌빌거리며 쉬고 있었습니다. 기껏 하는 것이 이불 속에 누워 뒹굴거리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만화를 보거나, 텔레비전을 켜놓고 눈만 굴리고 있겠지요. 애야~~ 안되겠다. 오름에나 올라가자. 아빠, 그냥 쉬고 싶어요. 어제도 오늘도 쉬지 못했다 말이에요. 그냥 무조건 쉴래요. 완강한 아들을 살살 달래서 가장 가까운 오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아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계속 궁시렁거리기만 합니다.

 

아들아, 아빠는 무척 신난단다. 아들과 함께 오름에도 오를 수 있고. 아들아, 이렇게 바람쐬는 것이 쉬는 것이야. 너도 훗날 아빠가 되면 아들과 함께 등산도 함께 할 수 있고 좋지 않겠냐? 훗날 네가 만약 아빠가 된다면 아들에게 뭐라고 말할래. 그렇지만 아들은 여전히 투덜거리기만 합니다. '뭐요~ 제가 지금 아빠에게 하듯이 꼭 그렇게 말하겠지요.'  

 

좋은 아빠 되기가 참 힘드네요. 잘해 줘도 고마운 줄을 모르다니. 그렇지만 애들 입장에서는 귀찮기만 하겠지요. 제 놈들의 관심사는 딴 데 있으니까요. 마침내 아빠도 아들 앞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야~ 아들아. 아빠가 꼭 네 앞에서 애교를 부리고 코믹쇼를 해야 하겠냐? 이렇게 아빠와 아들은 서로 궁시렁거리기도 하고, 낄낄 웃기도 하면서 오후의 작은 등산을 마쳤습니다. 아직 아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이것이 아빠의 작은 행복인 것을요.

 

늦가을 초겨울의 오름에는 풀꽃들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좀딱취 꽃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시기를 놓친 것 같고요, 혹시 길 옆으로 호자덩굴 붉은 열매라도 찾을 수 있을까 기대를 하면서 발밑을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없었습니다. 아마 오름등반이 인기를 끌면서 자연의 생태계도 피해를 입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내려오는 길 끝자락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습니다. 길 옆 햇살이 약간 스치는 곳에 싱싱하고 붉은 열매가 맺혀 있었습니다. 올 가을에 꼭 만나야겠다고 간절히 소원했던 덩굴용담(줄용담)의 씨방입니다. 비록 꽃은 만나지 못했지만 씨방이라도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얼른 길을 멈추고 장비를 풀어 몇 컷을 찍었습니다.

 

아래는 지난 시월말 한라산 높은 곳에서 몇 장 얻은 멧용담의 사진입니다. 갑자기 불어닥친 칼바람 눈꽃에 모든 풀꽃들은 시들어 흔적을 감추어 버렸는데, 양지 바른 갈색의 풀밭에서 홀로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마음 속으로 춥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사람보다 훨씬 강인하고 당당한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서언합니다.

 

용담, 용의 쓸개,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무척이나 이롭다는 풀꽃이겠지요. 갑자기 옛날 한자 시간에 배웠던 공자님 말씀이 입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良藥苦口이나 而利於病이고 忠言逆耳而利於行이니라.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로움이 있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함에는 도움이 된다는 뜻이지요. 아직은 철없는 애들도 언젠가는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며 감사할 날이 있겠지요. 험한 계절 속에서도 여전히 꽃을 피워내는 풀꽃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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