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52 / 금불초

풀빛세상 2010. 11. 23. 12:26

 

 

  

 

수능시험을 마친 쌍둥이 형제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저녁 형제는 약속이나 한듯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서 그동안 쌓아놓았던 교과서와 참고서와 문제지들을 몽땅 밖으로 내쳤습니다. 쌓아놓은 무더기가 작은 트럭 한 대 분량은 될 것 같은데, 아무 미련없이, 서로 마주보고 실실 웃으면서 몽땅 집 밖으로 옮겨내었지요. '야! 벌써 그렇게 하냐. 좀 천천히 하지. 아깝지 않으냐' 하니까, '뭘요, 학교에서부터 내버린 친구들도 많아요.' 애들은 내일의 결과가 어찌될지언정 오늘 당장 무거운 짐을 벗었다는 홀가분함에 들떠 있었습니다.  

 

동료들이 모여서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애기가 태어나면 엄마는 아인슈타인 우유를 먹인데요. 아갸야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가 되라고 하면서요.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서울우유로 바뀐데요. 그래도 서울대학은 들어가겠지. 중학교 들어가면 연세우유로 바뀌고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건국우유로 바뀐데요. 그래도 인 서울(In Seoul)은 해야되지 않겠냐고 하면서요. 그런데 고 3이 되면 매일우유로 바뀐데요. 아무 대학이라도 좋으니 제발 들어가기만이라도 해 다오 ....  

 

우리는 모두 배를 잡고 깔깔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웃음 속에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지요.

 

아시안 게임이 한창입니다. 매일 매 순간 우리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금메달을 따는 순간의 생중계를 보면서 흥분하기도 하고, 손에 땀을 쥐기도 하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쉬워할 때도 있지요. 그렇지만 주최국 중국을 비롯해서 몇몇 국가에서 금메달을 비롯해서 은메달 동메달을 휠쓸어가다보니 메달에 대한 흥분이나 감동이 옛날 같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너무 많이 따는 거 아니야? 약소국들은 어찌 하라고....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금불초(金佛草)입니다. 이름 그대로 금부처풀입니다. 풀꽃들 중에는 종교적 이름, 특별히 불교적인 이름을 가진 것들이 제법  있습니다. 금불초를 비롯해서 갯금불초 부처꽃 좀부처꽃 불두화 중의무릇 중대가리 지장보살(풀솜대) 등이 있고, 이름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절에서 스님들이 좋아하는 상사화도 있지요. 이런 이름 하나 하나도 다 유래가 있고 사연이 있으니 하나씩 찾아보면 좋은 공부가 되겠지요.

 

금불초는 8,9월의 강한 태양빛 아래에서 강렬하게 금빛으로 빛나는 풀꽃입니다. 바닷가에 가면 갯금불초라고 또 다른 풀꽃이 피어나지요. 크기는 대략 100원짜리 동전 정도이지만, 생육상태가 좋은 곳에서는 500원짜리 동전 정도가 되기도 합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로 금빛 찬란한 불상의 색감 그대로인 것을 알게 되고요, 다시 생각하면  땀흘리면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만이 얻을 수 있는 금메달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면서 팽팽한 긴장 속에서 쉬임없이 달려온 이 땅의 아들딸들과, 힘에 겹도록 뒷바라지를 해 오신 부모님들에게도 금메달을 걸어드리고 싶습니다. 모두 수고 많이 했다고요. 그동안 고생했다고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모두 인생의 승리자들이 되라고 하면서요. 우리 모두가 승자가 되는 그날을 꿈꾸면서 우리 모두는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달려가야겠지요.

 

그런데요, 금불초를 보면서 또 다른 상념에 젖게 됩니다. 부처님은 모든 것을 버리라고 했지요. 생로병사 백팔번뇌 고집멸도 팔정도(生老病死 百八煩惱 苦執滅道 八正道). 인생사 모든 괴로움은 집착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그것을 버려야 도를 통하여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지요. 육신의 겉껍질을 버리고 자아까지 버리며 버림이라고 하는 그것까지 다 버려야 한다고 했지요. 그렇게 해서 부처님이 되셨는데,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훌훌 털어버린 부처님에게 금을 입혔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쩌자는 것인지....... 

 

어디 부처님 섬기는 분들만 그런가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가난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노라고 하는 분들 중에도 비슷하게 행동하는 분들이 많이 있지요. 그 하늘의 하나님은 겉으로 보이는 우상 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우상까지 다 버려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해야 하늘을 볼 수 있고 하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도 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금메달의 우상은 버리고 그 대신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땀흘리며 달려가면서 우리 모두가 다 승리자가 되어야 하겠지요. 탐욕의 금메달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영광의 금메달을 서로에게 걸어주어야 하겠지요. 풀빛세상 더욱 짙푸른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다 승리자가 되는 그날까지, 승리자라는 그 말까지도 의미를 잃어버리는 그 날을 꿈꾸면서 함께 달려가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