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49 / 며느리밑씻개

풀빛세상 2010. 11. 13. 14:39

 

 

 

 

야생화에 대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분들이라면 빠뜨리지 않고 찾아서 찍고 사연을 올리는 풀꽃들이 있습니다. 꽃이 아름다워서도 아니요, 희귀성을 가진 것도 아니요, 그냥 평범하고 소박한 풀꽃이지만 꽃에 얽힌 사연이 남다르기 때문이겠지요. 그 중에 며느리밑씻개는 빠질 수 없겠지요. 그와 비슷한 며느리배꼽 역시 한 몫을 한답니다.

 

요즘은 화장실 문화가 발달하여 전국 어디에 가나 좌변기들이 놓여있고요, 부드러운 화장지가 널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통시에 쪼그려 앉아서 볼 일을 보았고요, 곁에 놓여있는 짚단에서 짚 한 줌을 뽑아 손으로 비벼 부드럽게 만든 후 뒤처리를 했습니다. 그나마 신문지라도 있으면 최고급이었고요, 여백이 없을 정도로 연필로 빽빽하게 글쓰기나 문제 풀기를 하고 내버려지는 공책이나 연습장만 있어도 모두 화장실로 보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뒤처리를 한 그곳에는 분명히 흑연이 시커멓게 자국을 남겼을 텐데요.

 

그 당시 이런 일도 있었다지요. 한국 여행을 온 여행객이 볼일이 급하여 시골의 통시로 안내를 받았답니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갔던 외국인이 금방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서 뛰어나오더랍니다. 그럴 수 밖에는요. 아무리 급해도 선진국에서 왔다고 하는 그분들이 냄새나고 지저분하고 쪼그러 앉아야 하고 똥물이 통통 튀는 그곳에서 어찌 볼 일을 볼 수가 있었겠나요. 그런데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요즘 한국인들 중에서 좌변기가 아니면 볼 일을 못 본다는 분들이 있다고 하네요.

 

며느리밑씻개에 대해서는 항상 옛날 옛적 고부갈등 이야기가 빠지지 않지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들에서 일을 하던 중 볼일이 급한 며느리가 수풀로 들어갔다지요. 그 옛날에는 볼일을 마치고 주변의 풀들을 뜯어 사용했는데 적당한 것이 없었던가 봅니다. '어머니 풀 좀 뜯어주세요' 하니,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가시가 총총 달려있는 풀과 줄기를 뜯어다가 주었다고 하지요. 혼 좀 나보라고요. 그런데 실제 그런 일이 있었을까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결코 마음 편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뒤적이면서 더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눈에 띕니다. 이 식물은 1937년 이전에는 어떤 이름으로 불려졌는지 알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 식물의 일본명은 ‘계자고식(繼子尻拭)’인데, 계자(繼子)는 내 배에서 낳지 않은 남편의 자식이요, 고식은 꽁무니를 닦는다는 뜻이니까, 우리나라에서 고부갈등이 있었던 것처럼 일본에서는 의붓자식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이 내용을 한국식으로 각색하여 며느리밑씻개라고 했다는 설이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상당히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 당시 일본인들은 한국의 좋은 전통들을 다 말살시키면서 좋지 않은 이야기들만 부풀려 전달했거든요.

 

그런데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 풀꽃은 치질과 어혈 등에 약효가 있어 시어머니가 이것 한 아름을 안고 들어와 푹 삶은 후 따뜻한 물을 며느리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대를 이을 자손을 중시하던 전통사회에서 며느리의 건강을 챙기는 시어머니의 자상함이 엿보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말에 씻다와 닦다는 분명히 다릅니다. 며느리밑씻개라는 말은 밑을 씻는다는 말과 연결되어야 하겠지요.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상어 이빨을 닮아있는 가시가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 가시만 아니라면 사랑받았을 것이요, 좋은 이야기를 얻었을 텐데요. 인생도 마찬가지일까요? 아무리 예쁜 얼굴이라도 성품에 가시가 많으면 사랑받을 수 없겠지요. 옛 노래가 갑자기 떠오릅니다.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예쁘야 여자지.

 

며느리밑씻개, 참으로 억울한 이름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풀은 독소를 제거하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유용한 성분이 있다고 하니 앞으로 반드시 좋은 날이 있으리라고 위로의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이 땅의 풀꽃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찾아 주고 싶어하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