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48 / 명아주

풀빛세상 2010. 11. 12. 17:29

 

 

 

가을이 깊어갑니다. 여름 내내 초록의 한 가지 색갈만 가졌던 산과 들의 온갖 나무들과 풀들은 그동안 감추어 놓았던 아름답고도 화려한 옷을 꺼내 입고 조용히 겨을맞이를 합니다. 한 세상 젊고 푸르게 살았노라고 하면서 아쉬움을 달래듯이 말입니다. 들판의 풀들은 대부분 회갈색으로 변해가면서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지만 그네들 중에는 특이한 색갈로 마지막 가는 세월을 맞이하는 풀들도 있습니다. 그네들 중에서 명아주와 여뀌와 같은 식물들은 색이 붉게 변해가지요. 가끔씩 역광을 받아 선명한 빛을 드러내는 명아주 이파리를 보노라면 황홀해지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가끔씩 노년의 삶이 더욱 아름다운 어르신들이 있듯이 말입니다.

 

명아주, 우리 주변에 너무도 흔하고 평범한 풀입니다. 시골의 여름 장마철은 풀과의 전쟁이지요. 이때 어머니는 밭고랑에 무성하게 자라는 풀들을 아낌없이 뽑아내지만 돌아서면 여전히 풀들은 밝게 웃으면서 '나 여기 있수'라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네들 중에 명아주도 한몫을 했지요. 그만큼 왕성한 생명력을 끈질기게 자랑한다는 뜻입니다. 저희 마을에서는 쇠비름이라고 했습니다. 나물로 해 먹을 수 있다는 뜻이었겠지요. 그렇지만 정확한 이름은 아닙니다.

 

여린 잎을 뜯어다가 된장국에 넣어도 좋고, 나물로 무쳐 먹을 수도 있고, 말렸다가 들기름을 쳐서 볶아 먹어도 된답니다. 그렇지만 먹을거리가 흔하고 흔한 요즘에 누가 쳐다보기나 할까요? 그렇지만 오염에 찌들은 밥상을 멀리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문화가 확산될 때 쯤이면 크게 환영을 받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명아주를 특별히 기억하는 것은 청려장이라고 하는 지팡이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명아주는 볼품이 없습니다만, 정성껏 키우게 되면 3m 길이에 제법 굵어진답니다. 속이 비어있어 가볍고 중간중간에 마디가 있어 쉽게 부러지지도 않습니다. 잔뿌리 많은 부분을 잘 다듬으면 지압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지팡이 재질로서는 안성맞춤이겠지요.

 

그래서 옛부터 부모님의 연세가 50이 되면 자식들이 지팡이를 만들어 드렸는데 이것을 가장(家杖)이라 했고요, 60세가 되면 마을에서 만들어 준다고 하여 향장(鄕杖)이라 하였고, 70세가 되면 나라에서 만들어 준다고 하여 국장(國杖), 80세가 되면 임금님이 만들어 내린다고 하여 조장(朝杖)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중에는 전국의 100세 노인들에게 무병장수하시라고 청려장을 하사하신 일이 있고, 그 이후에도 이 전통은 계승되고 있겠지요. 그 외에도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의 어르신들에게 청려장을 만들어 선물로 드리기도 한답니다. 

 

부모님 나이 오십이 넘으면 자식들이 명아주로 청려장을 만들어 선물했다고 하는데, 제 아들들은 명아주가 뭔지 청려장이 뭔지 알 리가 있나요? 오늘 저녁에라도 자식들을 모아놓고 청려장 지팡이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허긴, 저도 부모님께 지팡이 하나 선물해 드린 적이 없는 불효로 살았으니 제 자식들에게 뭘 기대할 수 있을까요?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겨울의 문턱에 명아주로 만드는 청려장을 떠올리면서 부모님께 제대로 효도 한 번 못하면서 살고 있는 제 자신을 반성해 봅니다.  

 

날씨 점점 추워지는 겨울의 문턱에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