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47 / 나비의 쉼

풀빛세상 2010. 11. 8. 21:38

 

 

 

나비가 쉬고 있었습니다. 고단한 두 날개를 고이 접고 바람에 간들거리는 좁고 길다란 풀 위에 앉아서 꿈을 꾸고 있는 듯 합니다.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요? 저 작고 귀여운 나비의 꿈은 천연색일까요? 흑백일까요? 평화로움일까요? 아니면 뭔가에 쫓기는 두려움일까요? 가까운 곳에서 카메라 셧터음이 찰칵 찰칵 하지만 나비는 듣지 못한 것인지, 공기의 파동도 느끼지 못한 것인지, 아무 움직임도 없었습니다. 아마 깊이 잠이 든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고단했으면....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나비의 쉼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호접지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지요.

장자가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깨어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도대체 장주인 자기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지....... 장주와 나비는 분명 별개의 것이건만 그 구별이 애매함은 무엇 때문일까요?

 

가끔씩 아내가 깊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지켜 볼 때가 있습니다. 한낮의 고단함에 지쳐서인지 곁에서 부시럭거려도, 몸을 흔들어도,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분명히 아내는 숨을 쉬고 있었고, 심장은 폴짝폴짝 뛰고 있었고, 아내의 왼편 젖가슴 위에 살풋 귀를 올려 놓으면 콩콩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렇지만 잠든 본인은 숨을 쉬고 있는지, 심장이 뛰고 있는지, 자신이 산 목숨인지 죽은 목숨인지 어찌 알겠습니까? 이럴 때 삶과 죽음의 차이가 무엇일까, 이승의 삶과 저승의 삶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곰곰 생각해 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기도를 한답니다. 하나님, 잠에서 깨어보니 천국에 가 있기를 원합니다. 천수를 누리다가 잠든 중에 고통없이 호흡은 멈추고 영혼은 몸을 빠져 나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는 소박하면서도 간절한 소원이겠지요. 아직 젊다면 젊은 저야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저도 칠십이 넘고 팔십의 나이가 된다면 저절로 이런 기도가 입에서 나오지 않을까요? 

 

나비의 평화로움과 고단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몸집에 비해서 커다란 두 날개를 펴고 훨훨 하늘을 날아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다닙니다. 맛있는 꿀물이 밥이요 맑고 투명한 아침 이슬로 목을 축입니다. 얼마나 행복할까요? 얼마나 평화로운 풍경입니까? 신선놀음이 따로 없을 듯 합니다.

 

그렇지만 바람이 솔솔 부는 날이면 어깨죽지가 얼마나 아플까요? 비라도 오는 날이면 제대로 꿀물을 챙겨먹기나 하겠나요? 맑은 날이면 새들이 날아다닙니다. 사마귀라는 놈이 숨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개구리가 폴짝 폴짝 뛰어다니면서 겁을 줍니다. 거미줄에 걸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여린 숨을 할딱이면서 독침을 기다려야 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하늘에서 농약이라고 하는 비가 쏟아질 때에는 피할 곳도 없습니다. 날마다 생(生)과 사(死)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것이 나비의 한 평생이겠지요.

 

장자의 호접지몽이라는 내용도 겉으로 보이는 해석이 있지만, 속 깊은 곳에 숨겨 놓은 또 다른 해석을 눈여겨 봐야 하지 않을까요? 때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춘추전국 시대였습니다. 선비들은 자기를 드러내어 이름을 얻고자 했습니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을 배불리 먹이겠다는 꿈을 내세웠습니다. 그렇지만 전쟁은 끝없이 이어졌고, 찬탈과 수탈의 틈바구니에서 백성들은 힘들어 했습니다. 이런 혼돈의 시대 속에서 꼿꼿하게 살 수 있을까요? 과연 그 꼿꼿함이 세상의 등불이 될 수 있을까요? 차라리 바람이 불면 머리를 숙이고, 태양이 높이 뜨면 고개를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노장사상에 대해서 깊이 공부해 본 적이 없어 더 이상은 풀어나갈 수 없지만, 나비의 꿈 하나를 두고 장자는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자기의 정체성에 대해서 깊이 고민했을 것입니다. 꿈 속의 나비가 나냐, 아니면 나는 나비의 꿈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풀 숲에 쉬고 있는 나비의 꿈 속에서 풀빛세상의 평화를 찾아봅니다. 세상에는 참된 평화가 없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