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44 / 환삼덩굴

풀빛세상 2010. 11. 5. 14:22

 

 

 

 

 

하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자애들이 징징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 여자애들 때문에 학교에 못 다니겠어요. 막 때리고요, 꼬집기도 해요.

아니, 네가 남자인데 혼내주지 그러냐?

힘으로는 우리가 이길 수 있지만요, 그랬다가는 우리가 혼나요. 우리가 한 대만 쥐어박으면 여자애가 막 울어버려요. 그러면 주변에 있는 여자애들이 몰려와서 이렇게 해요. 연약한 여자애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또 담임선생님한테 일러주기라도 하면 우리만 혼나요. 그래서 참고 있으면 여자애들이 또 찾아와서 놀리고 때리고 꼬집고 그래요. 차라리 한 대 맞고 모른 척하고 참는 것이 더 나아요.

그러면 듣고 있던 엄마가 애를 꼭 안아주면서, 에구, 우리 아들, 무척 속상하겠다. 그래도 씩씩한 남자가 참아야지. 하면서 보듬어 주면서 등을 토닥거려 주었지요.

 

왈가닥이었던 여자애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애가 초등학교 시절에 타지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학교에 적응해 갈 무렵 하루는 앙앙 울면서 집으로 왔지요. 엄마, 그 애 때문에 학교에 못 다니겠어요. 나 학교 안 갈래요. 엄마가 애를 달리면서 말을 들어보니 학교에서 남자애한테 맞았다는 겁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 같아서 엄마가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지요. 선생님 우리 애가 울고 왔는데요....

 

엄마의 말을 듣던 담임 선생님이 하하 크게 웃더랍니다. 사연인즉, 전학을 온 여자애가 학급 애들을 한 명씩 제압해서 모두 이겼는데, 그런데 마지막 한 명 남은 남자애에게 대들었다가 못 이기고 맞고 울더랍니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지요. 어머니, 아무 걱정 하지 마십시오. ㅇㅇ이는 씩씩하게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환삼덩굴 혹은 한삼덩굴이라고 합니다. 워낙 왕성한 생명력으로 뻗어가기 때문에 위해식물(危害植物)로 지정되어 인정사정없이 잘려나가지요. 그렇지만 전국 각처 방방곡곡 빈땅만 있으면 어디에서든지 뿌리를 내려 잘 자랄 수 있고요, 때로는 곁에 있는 식물들을 밀쳐버리고 저의 작은 왕국을 건설하려고 한답니다.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미울 수도 있을 겁니다. 저의 덩굴과 잎 어디에도 작은 가시들이 촘촘히 박혀 있기 때문에 맨살이 스치면 발갛게 부어오르기도 하고 따끔거리고 가렵게 되겠지요.

 

한방에서는 율초라고 부르면서 유용한 약재로 사용했고요, 저의 속명은 범상덩굴 혹은 껄껄이풀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껄껄이풀이 제일 적당하지 않을까요? 어디에 약효가 있냐고요? 제 이름에 '삼'이라는 글자가 들어있잖아요. 이것만 봐도 제가 남들에게 해만 끼치는 식물이 아니라 다양한 약효성분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줘야 할 겁니다. 무엇보다 제가 무성하게 자랄 때 베어다가 푹 썩히면 최고의 유기농 퇴비가 된답니다.

 

저의 가장 큰 특징은 암꽃이 피는 덩굴과 수꽃이 피는 덩굴이 따로 있다는 점입니다.

위에 두 사진이 있는데 어느 쪽이 암꽃이고, 어느 쪽이 수꽃일까요?

잘 생각하고 맞쳐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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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있는 작은 꽃송이들이 암꽃이고 밑에 있는 묵직한 것이 수꽃이라고요? 틀렸습니다.

위에 있는 가벼운 꽃송이들이 수꽃이고요, 아래에 있는 묵직하고 듬직한 근육질이 암꽃이랍니다. 

작은 꽃송이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면서 꽃가루를 흩어주면 제가 그것을 받아서 씨앗을 맺고 종족을 번식시켜 주지요. 저를 보면 남자의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요. 반면에 여자들은 '어매 기살아' 하면서 좋아하지 않을까요? 어디 저만 그렇나요? 벌들의 세계에 가도 여왕벌이 있고, 개미의 세계에 가도 여왕개미가 있어 종족을 번식시키고요, 수컷들은 목숨 바쳐 여왕을 지키며 모시지 않습니까? 원래 사람들도 문명의 초기에는 모계사회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성스러움과 남성다움이 뒤바뀐 듯한 환상덩굴의 꽃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성 차이를 떠나 각자가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가정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진정한 남녀평등이겠지요. 진정한 남녀의 평등을 생각해 보는 풀빛세상의 풀꽃이야기였습니다.

 

 

아주 작은 수꽃들을 확대해서 찍어 보았습니다. 생각보다 꽃이 정밀하고 아름답습니다.

남자인 저의 입장에서는 이게 암꽃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