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41 / 주름조개풀

풀빛세상 2010. 11. 3. 22:50

 

 

 

 

 

 

 

새들이 놀다 간 자리에 깃털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하튼 가볍고 부드러운 깃털 하나가 바람에 살랑거리다가 부드러운 가시가 무성한 풀에 걸려 그 자리에 머물게 되었다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이런 대화가 오고 갔을까요?

나 가고 싶어요, 놓아 주세요.

아뇨, 가지 마세요, 여기서 우리 함께 놀아요. 여기에도 좋은 친구들이 많거든요.  

 

어쩌면 이런 식으로 대화가 진행되었을까요?

 

여기요, 제가 잠시 머물러도 될까요? 제 몸이 너무 가벼워서 날아가버릴 것 같아요.

저를 꼭 붙잡아 주세요. 날아가지 않게요. 여기 풀밭에서 쉬고 싶어요.

그래요, 제가 꼭 붙잡아 줄테니 오래 오래 쉬다 가세요.

 

순전히 제 상상이었습니다만, 더 이상 사연을 적어가기에는 저의 상상력의 빈곤을 느끼게 됩니다.

 

 

시인이라면 시를 남겼을까요? 화가라면 멋진 그림으로 남겼을까요?

동화작가라면 그럴 듯한 동화 한 편쯤 남길 수도 있겠지요.

엄마 손을 잡고 가는 맑은 눈의 아이는 어떻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될까요? 

아니면 두 손을 가볍게 쥐고 가는 연인들이 곁에 앉아 도란거리다가 이 깃털을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만, 아마 풀에 걸린 깃털은 오래 오래 앉아서 세상에서 보고 들은 것을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곁자리에 앉은 풀들도 열심히 귀를 기울이며 들었겠지요. 그래서 풀들의 마음 속에도 소망이 생겼습니다. 아~ 우리에게도 날개가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 멀리 멀리 훨~훨~ 날아다니면서 아름다운 풀꽃들의 세상을 더 많이 보고 싶구나. 하늘님 우리에게도 날개를 주세요. 깃털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날개를 주세요.

 

마음에 소원을 품고 간절히 기도하면 이루어지는 날이 있다고 하지요. 어느 날부터인가 몸 한 구석이 간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속으로부터 꼼질거리면서 희고 작은 날개 하나가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풀의 간절한 기도를 들은 하늘님이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던가 봅니다. 어~ 여기도 간질 간질, 저기도 간질 간질....

 

 

 

야~ 날개가 돋았습니다. 새의 깃털을 담은 앙증맞고 작은 날개가 이곳 저곳에서 돋기 시작했습니다.

 

보십시오. 온 몸에 하얀 천사의 날개가 돋아나지 않았습니까?

 

날개를 확대해 보았습니다. 처음에 살포시 앉아서 세상 이야기 들려주었던 새의 깃털이 분명한 것 같지 않습니까? 깃털은 멀리 멀리로 날아가 버렸지만 풀은 행복했습니다. 요정의 날개를 얻었거든요.

 

주름조개풀이라고 합니다. 응달의 풀밭에서 많이 볼 수 있겠지요. 자리에 앉으려고 하면 뾰족뾰족하게 튀어나온 가시 때문에 성가시기도 할 겁니다.  그렇지만 부드럽기 때문에 찔리거나 상처가 날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하얗게 나풀거리는 꽃은 너무 작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봐야 이게 꽃인가 생각이 들 정도이니까요. 그러나 접사렌즈를 통해서 정밀하게 찍고 또 컴퓨터로 옮겨와서 확대를 시키고 보정작업까지 거치면 숨겨진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연은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다 보여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그 비밀한 세계를 보여주지도 않을 듯 합니다. 여보세요. 제가 여기 있거든요. 제가 관심을 가지고 찾아왔으니 비밀의 문을 좀 열어 주실래요. 이렇게 사정을 하면서 잔뜩 엎드리고 눈높이를 맞추게 되면 풀꽃들은 수줍은 듯 그러나 당당하게 그네들의 세상으로 우리들을 초대해 주겠지요. 그렇지만 황홀한 그 아름다움의 순간은 너무도 짧기만 합니다. 어느새 아저씨 안녕 내년에 또 봐요 이렇게 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풀꽃에 요정의 날개를 달아주며 즐거워하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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