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42 / 바위솔

풀빛세상 2010. 11. 4. 17:21

 

 

 

며칠 전 바위솔 담으러 가자는 초청을 받았습니다. 바위솔은 산이 깊고 외진 어느 바위 틈에 있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마을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안내하는 분이 시골의 농로길을 잠시 내려가다가 차를 세우고 소나무 아래에 홀로 앉은 무덤가에 있는 바위솔을 보여주었습니다. 제주도 무덤의 특징은 육지와는 달리 사방으로 반듯하게 돌담을 쌓는다는 것이지요. 돌담 위에 바위솔 가족이 옹기종기 분가살이를 하면서 이곳 저곳 흩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활짝 핀 것, 이제 막 꽃송이를 벌리는 것, 당당하게 서 있는 것, 사람의 발에 밟혀 꼬부라진 것, 홀로 있는 것, 무리지어 있는 것, 제주도 말로 쪼골락한(작은) 것도 있었습니다.

 

바위솔은 바위 소나무라고 해석하면 적당할까요? 오래 전 몹시도 더운 날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수백년의 역사를 지닌 고풍스러운 한옥의 저 높은 지붕 위에 낯설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날은 몹시도 덥고, 태양열은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는데, 뜨끈뜨끈한 기와 위에 식물들이 당당하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신기했었지요. 안내하는 분에게 '저 식물이 무엇입니까' 물어보니 와송(瓦松)이라고 했습니다. 바위솔은 바위 소나무, 와송은 기와 소나무라고 해석해도 되겠지요. 

 

가만히 생각하니 둘 다 같은 식물이었습니다. 어디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이름이 다르게 불려지는 것은 아닐까요? 와송이나 바위솔에게는  몇 가지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열악한 환경에 적응해서 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새로운 곳이 아닌 역사가 오래되어 낡고 묵은 곳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와송 한 개체가 뿌리 내려 자라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는 작지만 당당한 기품이 있습니다. 네 번째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 사람들의 발에 짓밟혀서인지 다 몽개지고 작아져버렸습니다 - 

 

 

바위솔과 관련해서 한국의 소나무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제가 어릴 때 마을 민둥산에서 자라는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사방으로 휘어지고 꼬부라진 특징들이 있었습니다. 옛 그림에 나오는 소나무들도 하나 같이 빼뚤거리는 모습에 옆가지를 늘이뜨리고 있지 않습니까? 소나무는 원래 꼬부라진 것이요 휘어지면서 자라는 것이야. 이렇게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충청도 지역을 지나가면서 하늘 높이 쪽쪽 곧게 자라는 소나무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소나무도 다양한 종류가 있겠지만 원래부터 휘어지고 꼬부라진 것은 아니랍니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답니다. 환경만 좋으면 소나무도 쪽쪽 곧게 자랄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일까요? 환경이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잘못된 습관으로 몰아가고, 그래서 모나고 비뚤어질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사람도 사람 나름인 것 같습니다.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꼿꼿하게 자라며, 많은 상처를 품었으되 오히려 그 속에서 향기를 품어내는 분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왜 신을 찾을까요? 왜 종교의 경전들에 심취할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곳에는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인간승리를 이루어갔던 많은 분들의 이야기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분들의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이요 흠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신의 뜻을 따르며, 신의 인도함을 받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고단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후회없는 삶을 살았노라고 고백하며 하늘의 품에 안겼지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더욱 아름다워지는 풀꽃들의 세상이었습니다.

  

- 뭉개져도 꼿꼿하게 일어서려는 저 불굴의 용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