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43 / 쥐꼬리망초

풀빛세상 2010. 11. 4. 20:29

 

 

 

 

쥐꼬리망초, 이름이 참 흉하지요. 왜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잘 알지는 못해도 참 억울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우리 조상님들이 이름을 붙여주기에는 인색하여 남자 이름을 개똥이 쇠똥이라 부르고, 여자 이름을 꼭지라고 불렀다지만, 너무도 여리고 순하게 생긴 풀꽃의 이름을 쥐꼬리에다가 망초(망할풀)까지 붙였으니 무슨 사연이 있을까요? 어떤 분이 이렇게 해석해 놓은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름을 흉하게 붙인 것은 미워서가 아니라 탈없이 오래 오래 살라는 깊은 뜻이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참 좋겠습니다. 쥐꼬리망초,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있는 여리고 여린 풀꽃이랍니다.

 

쥐꼬리망초. 이 풀꽃을 볼 때마다 마음의 부담이 있었습니다. 항상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밭을 매든지, 혹은 정원을 가꾸며 정리할 때에는 제일 먼저 뽑아서 내던져야 합니다. 저만 그럴까요? 모든 농부들이 '귀찮아' 하면서 쑥 뽑아 내던지겠지요. 마당을 정리하는 주부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아름답지도 않은 것이 밝게 웃으면서 항상 인사를 건네옵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 또 찾아왔어요. 저 이쁘죠? 하듯이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크크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래, 너도 자세히 보니까 예쁜 녀석이구나.

 

항상 가까이에 있으면서 억울한 이름을 가졌고 그러면서도 너무도 순한 풀꽃입니다. 가시가 있는 것도 아니요, 억센 뿌리로 땅을 꼭 붙들고 있는 것도 아니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것도 아니요, 그래서 특별한 사연이나 전설이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만약 저에게 이꽃의 이름을 붙여주라고 하며 '순둥이풀'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농사를 지어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다 아시겠지만 쥐와의 싸움입니다. 들에 가면 들쥐가, 집에 가면 집쥐가 농부들을 괴롭힙니다. 쥐들이 얼마나 끈질기고 교활한지 함께 생활해 보지 않은 분들은 모릅니다. 농부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귀여운 생쥐 미키마우스를 창작한 월터 디즈니는 너무도 순진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아마 그는 농부의 아들이 아니거나,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농사철에 농부들은 거의 매일 들에 가서 논둑을 살펴야 합니다. 혹시라도 쥐가 구멍이라도 뚫어놓았다면 얼른 돌멩이로 틀어 막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는 벼를 심어놓은 논에 물이 다 빠져버리고, 심하면 논둑까지 무너지게 됩니다. 가을걷이를 하면 쌀가마니의 반은 창고에 넣고 나머지는 사람이 거처하는 방 뒤켠에 쌓아놓게 되지요. 밤중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가마니를 모두 들어내 보면 쥐들이 어느새 벽을 뚫고 들어와 쌀을 훔쳐먹고 쌀껍질(왕겨)만 수북하게 쌓아 놓습니다. 돌멩이로 구멍을 막고 시멘트로 발라 놓아도 쥐들의 집요한 공격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쥐와의 싸움을 하면서 농부들은 한 해 또 한 해를 보내게 되지요.

 

농부들은 쥐를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오늘날까지 쥐와의 공존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조물주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을 어떡합니까? 참고 견뎌야지요. 그건 그렇다치고, 왜 죄없는 풀꽃에다가 쥐꼬리망할풀이라고 이름 붙였는지 이해가 잘 안되기는 합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해석해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분홍빛의 꽃잎 속에 있는 하얀 줄무늬가 쥐꼬리를 닮았다고요. 그렇게 알고 살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옛 조상님들이 이 작은 풀꽃을 무척 자세히도 살폈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그렇지 않아도 쥐 때문에 골치가 찌끈찌끈 아팠는데, 그만 이렇게 뱉았을까요? 에이 쥐꼬리망할풀아!

 

물론 이것은 상당 부분 저의 상상력이 빚어내는 이야기입니다만, 어떻게 해서라도 이 순하고 여린 풀꽃의 억울한 사연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 풀꽃에 어울리는 좋은 이름이 없을까요?

 

작은 풀꽃들의 억울한 사연까지 귀담아 듣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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