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39 / 가을의 억세

풀빛세상 2010. 10. 29. 17:26

 

 

 

아름다움이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봅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을 일반화시켜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 저는 저 나름으로 제가 느끼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구를 느낍니다. 이성적인 사유가 발달해 있는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미학이라는 학문분야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모든 것을 수학적으로 풀어가려는 고대의 천재들은 아름다움을 수학적인 비례와 균형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도 했지요. 그렇지만 동양에서는 감성과 여백을 중시했던 것 같습니다.

 

아름답다는 말뜻을 알기 전에 먼저 '아름'이라는 말을 떠올려봅니다. 한 아름 두 아름이라고 할 때, 아름이라는 말은 팔을 둥글게 말아서 그 속에 들어오는 분량을 뜻하겠지요. 두 팔을 벌리고 아내를 안아봅니다. 아내가 참 아름답습니다. 엄마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엄마를 얼마나 사랑해? 아이는 두 팔을 둥글고도 크게 벌리면서 이렇게 말하지요. 하늘만큼 땅만큼. 그 순간 아이의 한 아름은 하늘을 품고 땅을 품을만큼 확장됩니다. 엄마를 무한 신뢰하는 아이의 순수한 사랑의 크기와 넓이입니다. 그런데 아이의 한 아름이 세월이 가면 갈수록 자꾸만 쪼그라들면서 작아졌던 것은 아닐까요?

 

잠시 시간을 내어 '만 레이와 그의 친구들'의 사진전을 다녀왔습니다. 입구에서 안내하는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서울에서 전시했던 것을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만 레이는 무척 유명한 분인데,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찾아오지 않네요. 왔던 사람들도 쓰윽 스치며 지나갈 뿐입니다.' 작품 설명과 함께 한 점 한 점 살펴보면서 많은 것을 느껴봅니다. 만 레이, 본명은 아니고 예명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화가였는데 작품이 전혀 안 팔려서 생계를 위해 사진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에 특출한 재능이 발휘되면서 사진예술의 기초를 놓았다는 분입니다. 그분과 그분의 영향을 받은 후대의 작가들이 찍어 올린 추상적인 사진들을 보면서 쉽게 이해는 안 되었습니다만, 그 분이 특출한 미적 감각을 소유한 분이었구나라는 사실은 알게 되었습니다. 나오는 길에 도록 하나를 구입했습니다.

 

가을이 깊어갑니다. 가을의 아름다움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그 말은 가을을 품어 안고 싶다는 뜻이겠지요. 어쩌면 가을의 품안에 안겨보고 싶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을의 억새, 많은 사진들을 찍었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 제 마음에 와 닿는 두 점을 골라보았습니다. 참 평범하지요. 그렇지만 제 마음의 품에 들어와 안기는 작품입니다.

 

세상을 더 많이 품어 안고 싶습니다. 마음의 폭을 넓히고, 두 팔을 더 넓게 벌려서 더 많은 사람을, 더 많은 풍경을, 가을의 쓸쓸함까지 품어 안고 싶습니다. 그런데 쉽지는 않네요. 아마 제 품은 작고, 저의 두 팔의 길이가 짧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가을에 여러분의 한 아름은 얼마만큼의 크기를 가졌는지 한 번 느끼며 생각해 보십시오.

 

두 팔을 더 넓게 벌려서 더 많이 품어보고 싶은 풀빛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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