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38 / 석류풀

풀빛세상 2010. 10. 27. 21:34

 

 

 

 

석류풀이라고 합니다. 한여름의 초록에서 늦가을에는 적갈색으로 변해가는 잎이 석류나무의 잎과 닮았다고 해서 석류풀이라고 불려지는 것 같습니다. 콩밭 가장자리에서 담았습니다. 흔하고 흔한 잡풀이 수북 수북 자라고 있었습니다. 손으로 한 번만 휘익 돌리면 뿌리채 무더기로 뽑혀 내던져지는 연약한 풀꽃일 뿐입니다. 콩밭 고랑 사이가 버거운지 귀퉁이 살림을 살고 있었습니다.

 

수없이 만났지만 이제껏 한 번도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없었습니다. 혹시 아직도 남은 꽃들이 있는가 두리번거리는데 갑자기 발 밑에 깨알만한 작은 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살피고 또 살펴야 겨우 꽃인줄 알게 되었습니다. 꽃이 피었네요. 티없이 맑고 하얀 꽃들이 '저 여기 있어요' 하듯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작은 순백의 꽃을 담느라고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집에 와서 확인하니 너무나도 정밀하게 만들어져서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작은 꽃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칠십의 은퇴를 이 년 앞두고 있는 할아버지 목사님 곁자리에서 젊은 우리들이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시골 작은 교회를 정성껏 섬겨 가시는 분이지요. 항상 온화하고 부드러운 표정과 머리 위로 하얗게 서리가 내린 모습을 보면서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납니다. 세월을 결코 헛되이 보내신 분이 아니네요. 도가 통하면 저런 모습이 되는가요? 영성이 깊어지면 저 모습으로 변해가는가요? 풀빛세상 풀빛영성을 수없이 되내이고 있어도 이런 분 앞에서는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언제쯤이면 저도 저 비슷한 모습의 반만이라도 닮아갈 수 있을까요?

 

지금도 베스트셀러라고 하는 책들은 대부분 구해서 읽어 본답니다. 피천덕 선생님의 글이 참 깊이가 있으며, 최근에 돌아가신 장영희 교수의 글도 참 좋다고 칭찬을 합니다. 그리고 한국 수필계를 이끌어 가셨던 분들의 이름을 한 분 한 분 짚으시는데, 젊은 우리들은 그냥 머리를 조아릴 뿐입니다. 세상에 드러난 분이 아닙니다. 물량으로 모든 것이 평가되는 세상에서 작은 것에 성실하시고 조용조용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해갈 뿐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분의 삶에서는 작은 풀꽃들의 아름다움과 향기가 우러납니다. 맑은 인생이라고 해야 하나요?

 

부러웠습니다. 존경스러웠습니다. 제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정신 차려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이 가을에 책 한 페이지라도 더 읽어야 하겠습니다. 풀빛세상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크고 작음을 초월하되,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깨알만한 석류풀 하나에도 정밀한 세계가 숨어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단 찾는 자가 찾을 것이요, 보려고 하는 자만이 보게 되겠지요.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찾아보며 감탄하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