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37 / 당잔대

풀빛세상 2010. 10. 26. 19:20

 

 

 

 

 

 

해는 저물고, 날씨는 차고, 당잔대 한 송이가 무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세상이 밝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걸까요?

 

구순을 바라보는 노파의 얼굴이 일순 밝아지며 흥분합니다. 딸이 살아있단다. 부랴 부랴 고운 옷 챙겨입고 부산에 있는 ㅇㅇ요양소로 달려가서 딸을 만났습니다. 오랫 동안 독한 약물에 찌들은 몸과 마음은 모두 황폐화 되어있었습니다만, 노파는 그 딸을 집으로 데려와서 온갖 정성으로 보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일어서지도 못했던 딸이 일어서서 걷게 되었고, 생리작용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던 여인네가 이제는 제법 정상적인 몸으로 돌아왔습니다. 딸의 나이도 칠순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모두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만들어내는 기적의 이야기였습니다.

 

도시의 끝자락에서도 10리길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한적하고 가난한 시골마을에 몹시도 아름다운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갸름한 얼굴, 오똑한 코, 한 번에 주욱 그은 눈썹, 이목구비가 분명했고 피부는 백옥이었습니다. 경남의 김지미라고 불려졌지요. 4-50십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고운 옷 챙겨입고 친구들과 단체사진을 찍을 때면 항상 제일 앞자리의 중앙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너무 예뻐서 친구들이 시샘을 했었다고 하지요.

 

소녀의 인생도 그 때까지였습니다. 가난한 집의 소녀가 이웃 마을로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시댁의 집안도 괜찮았고, 신랑도 훤칠한 키에 인물이 참 좋았습니다. 아들딸 낳고 살면서 산후 우울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완고하고 답답한 시댁의 분위기에 억눌렸을까요? 요즘이야 큰 문제가 안 되었겠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문명이 어두웠습니다. 귀신들렸다고 시댁에서 구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귀신 내어 쫓는다고 이상한 곳으로 끌고 다녔습니다. 그러는 동안 치유의 기회는 멀어지고 몸과 마음은 점점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미인박명, 미인의 명이 짧다는 뜻이겠지만, 미인의 인생길이 결코 편할 수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까요? 그만큼의 미모를 타고 나지 않았던 소녀의 친구들은 차라리 평범한 삶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너무 아름다웠던 그 여인네는 수십 년 세월을 죽은 목숨으로 살았습니다. 부모와 형제들과 자식들에게 지울 수 없는 응어리를 남겨주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살만했습니다. 떠난 자는 떠난대로, 남은 자는 남은대로, 바람이 불면 휘어지고, 태양이 밝은 날이면 꼿꼿하게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쓰러질듯 쓰러질듯 위태로웠던 인생들도 어느 순간 다시 일어서서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이란 눈물 반 웃음 반으로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이 세상 들판에서 자라는 대부분의 풀꽃들처럼 말입니다. 아무리 밟혀도 모질게 다시 일어서서 환하게 웃는 풀꽃들처럼 말입니다.

 

힘들수록 더욱 강해지는 풀꽃들의 세상,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