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32 / 고마리

풀빛세상 2010. 10. 21. 19:00

 

 

 

 

자꾸 어릴적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집 한 귀퉁이에 말뚝을 박아 돼지집을 만들었습니다. 벌써 40 여년 전의 한 옛날, 시멘트도 귀하여 진창으로 변해가는 흙바닥 위에 돼지가 뒹굴었지요. 냇가에 자라는 부드럽고 무성한 풀들을 잔뜩 베어다가 돼지 우리 속으로 던져주면 돼지들은 그 위에서 꿀꿀거리며 뒹굴었습니다. 우리는 그 풀을 돼지풀이라고 불렀습니다.

 

고마리, 이름이 참 특이합니다. 고마리 고마리.... 왜 고마리라고 했을까 찾아 보니 오염된 토질과 물을 정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나서 '고마워' 혹은 '고마운 이'라고 하여 고마리라고 했다네요. 대략 200 평의 고마리 군락지면 소 50여 마리의 배설물을 정화해 준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하고 고마운 식물이네요. 또 손가락이 베어 피가 날 때 이 식물을 찧어 상처난 자리에 묶어 주면 피를 멎게 하는 지혈작용이 있고요, 이 식물의 열매는 메밀 비슷하기 때문에 구황작물로도 재배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평범하고 흔한 식물이지만 알면 알수록 고마운 풀꽃인 것을 알게 됩니다.

 

꽃을 찍으면서 무척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꽃들은 한꺼번에 요란스럽게 피어나는데, 이것은 모여 있는 한 뭉치의 꽃송이들 중에 활짝 피어난 것은 겨우 하나 혹은 두 개 뿐이었습니다. 날씨가 흐려서 그런가,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런가 생각하고 다시 찾았으나 더 이상의 꽃은 피우지 않았습니다. 이 꽃은 땅 속에 꽃을 피워 이미 수정까지 마쳐버리는 폐쇄화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땅 위에서 궂이 벌과 나비를 불러 모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느긋하게 한 두 송이씩만 꽃을 피워내면 된다고 합니다. 참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자연의 신비요, 풀꽃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스러운 내용들인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땅 속에서 꽃을 피우는 식물을 발견했다고 하면서, 땅속에서 꽃을 피우는 폐쇄화가 전 세계적으로 약 100 여종 밖에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풀꽃을 보면 자주색의 닭의장풀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하게 보는 맑은 청색의 닭의장풀이 사실은 땅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폐쇄화라는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이 기사를 쓴 기자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던 것 같습니다. 땅 속에서 꽃을 피우는 식물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저 아래 따뜻한 남방에서 자라고 있던 자주색의 닭의장풀이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고 해야 하겠지요.

 

 고마리에 대해서 글을 적으려고 하니 하고 싶은 말이 자꾸 늘어납니다. 이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저는 연지 찍고 곤지 찍고 시집을 갔던 옛날 어머니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제 어릴적에만 하더라도 마을의 누나들은 볼과 이마에 연지 곤지 찍고 고개를 푹 숙인채로 시집이라는 것을 갔습니다.

 

그렇지만 하얀색의 고마리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순백으로 투명한 이 꽃을 보면서 크리스탈을 떠올리기도 하겠지만, 어떤 분은 신부의 하얀 드레스가 연상된다고 합니다. 맑고 희고 투명한 꽃잎을 보면서 저도 순결한 신부의 드레스를 떠올려 봅니다. 혹시라도 시냇가를 지나가다가 이 꽃을 보거들랑 속으로 이렇게 말해보시기 바랍니다. 고마리, 고마운 꽃..... 옛날에는 신부들이 연지 곤지를 찍었고, 요즘 신부들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

 

평범함 속에서 신비스러움을 찾아가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