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31 / 유홍초

풀빛세상 2010. 10. 19. 19:47

 

 

 

 

지금도 저의 컴퓨터 창고에는 많은 꽃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인님, 빨리 꺼내어 사연을 적어주세요 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저 역시 글재주가 없어서 많아 망설이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얼른 얼른 꺼내고 싶은 혹은 누군가에서 보여서 자랑하고 싶은 꽃들도 특별히 있기 마련입니다.

 

잎이 둥글다고 둥근잎유홍초, 그냥 유홍초라고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반면에 초록의 잎이 새의 깃털처럼 생긴 것을 새깃유홍초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제가 이 꽃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당당함입니다. 작고 붉은 꽃이 너무도 당당하게 하늘을 향해서 꽃잎을 꼿꼿하게 세웁니다. 특별히 예쁜 꽃도 아니고, 특별한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섬세한 것도 아니고, 정말 특별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런데도 날 좀 봐 주세요 하는 듯이, 나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라고 떼를 쓰듯이, 마지막 순간까지 꽃잎을 숙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시든 꽃잎 하나 땅으로 톡 떨구면 가을은 깊어가는 거겠지요.

 

내성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적극적인 사람과 소극적인 사람도 있지요. 소심하여 움츠리는 사람도 있지만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제각각 다른 모습 다른 성격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좋다 안 좋다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제각각 제멋으로 사는 것이겠지요.

 

저는 어디에 속할까요? 무척 내성적이고 소심한 편에 속하고 있습니다. 나도 적극적으로 행동해야지 결심하고 나섰다가도 금방 풀죽어 버리는 저를 드러낸다는 것이 무척이나 쑥쓰럽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속에는 이글거리는 불덩어리 하나쯤 품어 안고 있다고 말해도 될까요? 젊었을 때에는 저 불덩어리 때문에 무척이나 속앓이를 했었지요. 그래서일까요? 꽃들 중에서도 유난스러울 정도로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유홍초에 눈길이 머물게 됩니다. 저 푸른 하늘이 내 것인양, 이글거리는 태양을 품어 안듯이, 가을의 풀밭을 지키고 있는 저 붉은 유혹에 잠시나마 정신이 먹먹해집니다.

 

풀빛세상에는 차분함도 있지만 때로는 가슴에 상흔(傷痕)을 남기는 뜨거움도 있답니다.

젊음의 열정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