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 이야기 29 / 꽃과 벌 이야기

풀빛세상 2010. 10. 16. 15:34

 

 

 

 

 

가을이 깊어갑니다. 벌써 꽃들의 계절은 저물어가고, 남은 꽃들도 겨울 채비를 하는 듯 씨앗 맺기를 서두르는 것 같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창문틈을 통해서 들어오면서 여름 내내 열었던 창문을 닫고, 두터운 이불을 꺼내며, 여름 옷을 장롱 안에 차곡차곡 쌓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집이 있고 옷이 있지만 들판에서 살아가야 하는 곤충들에게는 시련의 시작이겠지요.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남은 목숨은 후손들에게 남기고 이제는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벌 한 마리가 바쁘게 날아다닙니다. 다른 벌들은 보이지 않는데 어쩐 일로 홀로 다니며 작업 중일까요? 다른 가족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벌들은 무리를 지어 산다고 하는데, 이렇게 혼자 날아든 것을 보니 대식구는 아닌 듯합니다. 어디에서 왔을까요? 얼마나 멀리에서 날아왔을까요? 동료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무리 둘러봐도 다른 벌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을까요? 혹시라도 외로운 단독 세대는 아닐까요?  뒷발에 꽃가루뭉치를 잔뜩 묻힌 것을 보니 집을 떠나와 제법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나비는 작은 몸에 큰 날개를 가졌기 때문에 안정감이 있고, 훨훨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 아름답다 우아하다는 느낌이 있지만, 벌은 그 반대로 큰 몸집에 작고 투명한 날개를 가졌습니다. 살짝 잡고 비비기만 해도 부서질 듯한 그 날개를 얼마나 빠른 속도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까요? 창조주가 벌을 만들 때 좀 더 크고 튼튼한 날개를 주시지 않고 왜 이토록 작고 여린 날개를 만들어 붙였을까요?

 

꽃을 향해서 빠르게 날아가는 벌의 날개가 보이지 않습니다. 공기의 작은 파동만 윙윙거릴 뿐..... 벌은 목표물을 향해서 곧장 달려듭니다.

 

 

 

이제 목표물에 도착, 날개짓의 속도가 약간 줄었습니다.

 

 

이제 무사히 앉았습니다. 빨리 꿀을 빨아야 합니다. 머뭇거리며 지체할 시간은 없습니다. 이곳 저곳을 두리번거려도 안 되고, 이것 저것 복잡한 생각도 떨쳐야 합니다. 오직 하나의 본능, 하나의 목표만 존재할 뿐입니다. 단순함, 그 속에 생(生)과 사(死)의 모든 것을 포함시켜 버립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름다움이라고 평가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의 꽃에서 결코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잠시 잠간 스치듯 머무르면서 꿀을 얻고, 이 꽃의 꽃가루는 묻히면서 저 꽃의 꽃가루는 털어냅니다. 왜 그렇게 바삐 사느냐고 하겠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숙명인 것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알고 보면, 그렇게 해야 식물은 유전자의 다양성을 주고 받을 수 있어 건강해진답니다.   

 

 

위에 있는 사진의 한 부분을 확대해 보았습니다. 날개 끝이 너덜너덜해 졌군요. 이 벌도 이제까지 무척 험하고 고된 인생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너덜거리는 벌의 날개를 보면서 감동을 받아 이 글과 사진들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맑고 좋은 날씨에도 작업을 했겠지만 비바람이 부는 날이라고 쉴 수는 있었겠나요? 따스한 날이면 좋았겠지만 쌀쌀한 날씨라도 꽃이 있으면 어디든지 다녔겠지요. 가는 곳마다 거미줄의 함정이 있었고, 개구리와 도마뱀 등등의 적들이 있었고, 그리고 더 무서운 농약이 뿌려지기도 했겠지요. 힘겨운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부지런히 살아왔습니다. 눈물이 아니라 땀을 흘리며 살아왔습니다. 주어진 생명이 다할 때까지 낡은 날개라도 쉬임없이 파닥거리면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하겠습니다.

 

자연 속에서 건강함과 감동을 찾아보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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