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28 / 솔체꽃

풀빛세상 2010. 10. 14. 17:22

 

 

솔체꽃 

신부의 부케를 닮은 꽃 

 

 

 

가을 산에 많은 꽃들이 피고 집니다만, 그 중에서도 특이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솔체꽃이 있습니다. 밝고 고운 보라색이 초록의 풀숲 사이에 수줍은 듯 조용히 앉아서 하늘을 우러러고 있지요. 저는 이 꽃을 보면서 귀족스러움과 함께 가을 신부의 부케를 연상하게 됩니다.

 

조금 전에 전화가 왔습니다. 며칠 후이면 결혼을 하게 될 교회의 아가씨가 결혼식에서 축복의 기도를 해 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겠다고 합니다. 당연히 기쁜 마음으로 받아야 하겠지만 마음 속에는 은근히 부담도 느껴집니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신랑신부에게 어떤 내용으로 축복의 기도를 해주면 될까요?

혹시라도 작은 실수라도 하면 안되겠지요. 아마 며칠간은 신경을 좀 쓰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결혼식 주례는 세 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장례식 집례는 더 많이 했습니다. 결혼식은 선남선녀가 만나 새출발을 하며 가정을 꾸리고, 두 집안이 친척이라고 하는 하나의 끈에 엮어지는 중대사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장례식은 흙에서 왔던 한 생명이 흙으로 돌아가며,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의 강을 건너가는 환송의 시간이겠지요. 결혼식에서는 기쁨을 나누고, 서로 웃으며, 축하의 인사를 나눕니다만, 장례식에서는 슬픔을 참으면서 위로의 말을 전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저는 장례식에서도 슬픔이 아닌 위로를 전해주려고 노력합니다. 아무리 슬플지라도 영원에서 왔던 생명이 영원으로 돌아가며, 풍우대작 )하는 인생의 거친 광야에서 시달리며 살았던 인생이 이제는 영원한 안식의 품으로 들어가며, 훗날 밝고 밝은 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희망을 전해주게 되지요. 그렇다 할지라도 장례식에서는 엄숙함과 진지함을 벗어나서는 안됩니다.

 

날씨 선선해지는 이 가을에도 많은 처녀 총각들이 결혼식을 치루고 가정을 꾸미게 됩니다. 결혼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신부의 손에 들려지는 부케일 것입니다. 고운 꽃들을 곱게 엮어서 신부의 손에 들려주게 되지요. 식이 끝나면 신부는 가장 친한 친구 혹은 다음 번에 결혼하게 될 친구, 아니면 빨리 좋은 짝 만나 결혼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담아 뒤로 던지게 되지요. 모두의 환호와 박수 소리에 부케를 받은 신부의 친구는 활짝 웃으면서 다음 번에는 내가 주인공이 될거야 이렇게 다짐하겠지요.

 

가을입니다. 가을의 꽃 솔체꽃을 보면서 신부의 손에 들려지는 부케를 떠올려봅니다. 이번 가을에 결혼하게 되는 많은 젊은 쌍들이 모두 좋은 가정 꾸려서 아들 딸 여럿 놓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주기를 빌어봅니다. 어렵고 힘들다고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더 힘차게 험한 세상을 헤치며 살라고 덕담을 던져주고 싶습니다. 검은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잡은 손 놓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결혼하게 되는 아가씨도 하늘의 복 땅의 복을 몽땅 몽땅 받아 누리기를 빌어봅니다.  

 

꽃말을 찾아보니 어이없게도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고 하면서 여자 친구에게는 선물하지 않는 꽃이라고 하네요. 아마 야생화를 잘 모르는 분이 해석을 잘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틀림없이 앳띤 신부의 손에 들려있는 아름다운 부케이거든요. 이제 시대가 변했으니 꽃말도 바꾸어야겠습니다. 가을 신부의 손에 들려있는 아름다운 꽃뭉치, 영원한 사랑의 약속이라고요. 꽃을 찬찬히 들여다보십시오. 기품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