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27 / 활나물

풀빛세상 2010. 10. 13. 13:12

 

 

활나물

보기만 해도 허허 웃음이 나오는 꽃 

 

 

 

개똥도 약에 쓰려면 귀하다고 했나요? 활나물 꽃도 찾아서 찍으려니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저번에 딱 한 개체를 만나 몇 컷 찍은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꽃송이도 더 많이 달려서 다양한 모양을 보여주는 모델을 만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활나물, 쳐다만 봐도 저절로 웃음이 빙그레 나오는 꽃입니다. 어둡고 우울했다가고 이 꽃을 보노라면 어느새 마음이 밝아지는 듯 여겨집니다. 활나물은 원래 그런 꽃입니다. 뭐랄까요?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개그맨들의 얼굴을 떠오르게도 합니다.

 

최근에 행복전도사 최윤희씨 부부의 동반자살로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함께 허탈감에 빠졌습니다. 저도 뉴스를 보고 들었을 때 정신이 멍해지면서 한동안 침묵을 지키며 여러가지로 생각에 잠겨보았습니다. 본인은 텔레비전에 나와서 혹은 초청하는 곳마다 바쁘게 찾아 다니면서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본인만 알고 남들은 모르는 큰 고통을 숨기고 있었지요. 밖으로 나설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밝은 얼굴에 아무런 고통도 없다는 듯이 가면을 쓸 수밖에 없었겠지요.

 

결코 그분을 비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의 앞길은 잘도 짚어주는 무당도 자기 앞길은 몰라서 고생하며 산다고 하지요. 남의 병의 고치는 명의도 자기 몸을 고칠 수 없어 바로 그 병에 걸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특별한 능력으로 손을 얹고 기도만 해도 병을 낫게 한다는 종교인도 본인이 아플 때에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몰래 병원에 다녀온다고 합니다. 희망과 소망을 설파하는 목사님들 중에서도 스트레스로 건강을 상하는 분이 많습니다. 청정한 숲속에서 덕담을 던져주는 스님들 중에서도 생로병사의 고해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번민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글을 적어가면서 갑자기 삐에로의 눈물을 떠올려 봅니다. 무대 위에서는 사람들을 웃게 하지만 무대 뒤에서는 울고 있는 삐에로가 멀리 있지 않겠지요. 어쩌면 우리도 이 세상에 적응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삐에로처럼 행세를 해야 하지 않나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삐에로가 되어라고 강요하지 않나요. 오늘도 우리는 밝고 환한 얼굴로 웃지 않으면 낙오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 역시 모순이 많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 선을 가르치면서도 내 속에는 선한 것이 없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는 향기를 말하면서도 내 속에는 오물과 악취로 뒤범벅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럴 때 저번 휴가 기간 중 고향 마산에서 찍어온 천상병 시인의 시비를 찾아보았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천시인님은 저의 고등학교 큰선배님이라고 하네요. 사진 속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저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면서 싱긋 웃어줍니다. 너 거기서 뭐하니.....  

 

쳐다보기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활나물의 꽃 앞에서 오늘은 너무 심각해져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활나물 풀꽃을 보시면서 다시 한 번 싱긋 빙그레 허허 웃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만큼 마음이 넉넉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