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24 / 한라부추

풀빛세상 2010. 10. 9. 11:39

 

 

 

늦가을, 이제 야생의 꽃들도 하나씩 둘씩 깊은 겨울잠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때 쯤이면 꽃을 담는 분들도 개점휴업할 준비를 하지요. 아직 가을 꽃들이 피고 지고는 하지만 그 종류가 많지 않습니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 1100습지를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 피었다던 여러 종류의 식물들과 꽃들을 때를 놓쳐 담지 못해서 섭섭했습니다만, 아직까지 남아서 저를 반겨주었던 한라부추와 반가운 인사를 할 수 있어 다행으로 알고 잠시나마 행복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꽃도 점차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의 초봄이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밭으로 가면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여러 야채들이 연두빛에서 초록으로 색이 변해가면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지요. 어머니는 통통하게 자란 부추의 첫순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사위한테도 안 주는 거란다. 그리고 그것을 잘라 반찬으로 만드신 후에 아들에게 먹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아마 겨울철을 지내고 새봄의 기운을 머금은 부추는 그 어느 때보다 몸에 좋다는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에 비해서 먹을거리가 많이 부족했던 그 시절에 어머니는 어떻게 하든지 몸에 좋은 것은 모두 아들에게 먹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성경의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사막)에서 다음과 같이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여기서 우리는 부추와 파와 마늘이 고대근동에서도 기력을 돋우는 강장식품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절에서는 마늘 파 부추 달래 무릇 이 다섯 가지 야채를 오신채라고 하여 금지한다고 하네요. 이 다섯 가지 식물은 대부분 자극이 강하고 냄새가 많은 것이 특징이며, 식욕을 돋우고 정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강장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수도증진하는 스님들에게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부추는 다양한 음식의 재료로도 사용되지만, 그 약리작용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몸을 덥게 하는 보온효과가 있어 몸이 찬 사람에게 좋고, 소화를 돕고 장을 튼튼하게 하며, 피를 맑게 하여 허약체질 개선, 미용, 성인병 예방효과가 있으며, 부추의 열매는 비뇨기계 질환의 약재이며, 혈액정화, 강장, 강심제로 쓰이고, 음식물에 체해서 설사를 할 때 부추된장국을 끓여 먹으면 효력이 있으며 산후통, 치질, 혈변, 치통, 변비 및 구토증의 치료와 개선효과가 있다. 이 글만 읽어보면 부추가 만병통치약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음식으로 사용하는 부추가 몸에 좋은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제가 어릴적에 배앓이를 자주 했습니다. 여름이면 설사가 날 때도 있었지요. 그러면 어머니는 얼른 밭으로 달려가 싱싱한 부추를 잘라와서 고추장과 함께 밥을 비벼 주었습니다. 벌건 부추비빔밥을 먹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픈 것이 낫고 설사가 멈추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어머니의 정성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매실액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한라부추, 한라산 1100m 이상, 전남 백운산 정상, 지리산 및 가야산의 높은 바위틈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산부추보다는 크기가 훨씬 작은 편이지만 같은 모양으로 꽃이 피어납니다. 아직 낮은 산에서 자라는 산부추는 꽃을 피우지 않았던데, 혹시라도 산에 가실 일이 있으면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이라도 여건이 되시는 분들은 부추전을 지져서 맛있게 드시고 행복한 저녁이 되시기 바랍니다.

 

1100 습지에는 한라부추가 무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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