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21 / 파리풀

풀빛세상 2010. 10. 6. 14:13

 

 

 

 

 

어릴적 시골 이야기는 항상 향수를 불러 일으킵니다. 요즘은 깨끗한 화장실에서 편하게 볼 일을 보지만, 옛날 시골에서는 통시라고 하는 곳에서 쪼그려 앉아 끙끙거렸습니다. 가끔씩 변이 떨어지면서 통 하는 소리와 함께 똥물이 튀어 올랐지요. 이때에는 얼른 엉덩이를 위로 올려 튀는 똥물을 피해보려 하지만, 가끔씩은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여름이면 구더기가 왜 그리도 많았던지요. 하얗게 통시벽을 타고 기어오른 후 뽈뽈거리며 흩어지는 모습 앞에서는 징그러움과 함께 기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디에서나 파리 떼가 윙윙거려, 우리는 날마다 파리와의 전쟁을 하며 살았습니다.

 

저녁이 되면 어머니는 방문을 닫게 한 후에 파리약을 뿌렸습니다. 그 당시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파리약을 접시에 담은 후 빨대 비슷한 것을 입에 물고 입바람으로 뿌렸습니다. 약을 뿌리고 나면 어머니의 입에는 온통 파리약이 묻었지요. 그러면 빨리 우물가로 달려가서 입을 씻었습니다. 한 30분쯤 후에 방문을 열면 방안에는 온통 파리들이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아 발과 날개를 발발 떨면서 누워있는 놈들까지 몽땅 빗자루로 쓸어담아 처리한 후에 우리는 편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이런 파리약도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파리들과 싸웠을까요? 우리의 선조들은 산과 들에서 파리풀을 찾아내었습니다. 약간 그늘이 지는 숲길에 가면 아래 보이는 풀꽃들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로 여름에 자라지만 요즘도 간혹 찾아볼 수는 있습니다. 이 풀을 뜯어다가 찧어 즙을 낸 후 밥풀과 섞어 내어 놓으면 파리들이 찾아와 앉아 빨아먹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파리풀이 되었답니다. 파리풀이라고 해서 파리가 좋아한다, 파리에게 유익하다 혹은 파리와 닮은꼴이다라는 뜻이 아니라, 파리를 제거하는데 사용했던 풀이라고 해야 하겠지요. 사람들의 입장에서야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지 상관없겠지만, 파리들의 입장에서는 무척 억울할 것 같습니다.

 

육지 상황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는 아직도 드물지 않게 이 풀꽃을 찾아 만날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마주치면 파리풀이라고 이름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작고 소박하지만 귀여운 풀꽃입니다. 유독한 화학약품 대신 자연에서 모든 것을 얻어 쓰는 그날까지.... 풀빛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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