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6 / 층층장대

풀빛세상 2010. 10. 1. 11:48

 

 

 

층층잔대/ 생로병사를 함께 매달고 있는 꽃

 

맥을 짚어보던 한의원의 젊은 원장님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가 봅니다. 맥이 긴장되어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러 가지 억눌린 삶의 상황들이 주마등처럼 늦가을의 서리 바람처럼 서늘하게 스치며 지나갑니다. 스트레스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에 꾸욱 참으면서 산다는 것이 참 어렵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아마 마음의 억눌림을 몸이 먼저 알고 '주인님 제가 좀 아플 터이니 며칠간이라도 푹 쉬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세미나에 참석한 동료들과 간단하게 운동을 즐겼습니다. 공원에서 애들이 놀고 있기에 구두를 신은 채로 끼어들어 잠시 공놀이를 한 후, 베드민턴 채를 들고 두어 번 휘두르는 중에 허리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삐긋하였습니다. 그 후로 고생한 이야기는 말로 표현하기가 좀 어렵네요. 밤중에 옆으로 돌아 눕지를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는 스스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겨우 일어서면 허리는 앞으로 굽고 옆으로 휘어지고, 허허 웃으며 거울을 보면 오만상이 다 지푸러진 사내가 억지웃음으로 마주보며 서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하며, 온갖 정성을 다하는 중에 이제 조금 살만 합니다.

 

꽃들을 찍을 때 어떤 대상을 찍을 것인가를 항상 생각하며 고민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전한 꽃송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모습을 찾아 셔터를 누릅니다. 그런데 저는 뭔가 부족한 듯한 모습들을 일부러 찾아봅니다. 만개한 꽃 옆에 있는 시들어가는 꽃, 누군가의 발길에 짓밟혀 휘어지고 꺽인 가운데 힘들게 꽃송이를 매달고 있는 모습들에서 짙은 아픔과 함께 인생의 고(苦)와 낙(樂)을 동시에 느껴봅니다. 그런 면에서 층층잔대는 항상 저에게는 좋은 모델이 되어줍니다.

 

아직 얼마 되지도 않은 나이에 생로병사를 곰곰 생각하는 제가 좀 이상한 사람인가요? 너무 겉늙어버렸는가요? 층층잔대, 올해도 저는 타박타박 풀꽃들의 세상을 거닐면서 인생의 아름다움과 함께 짧음을 느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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