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4 / 절굿대

풀빛세상 2010. 9. 27. 13:42

 

 

 

 꽃들이 비죽비죽 올라오려고 할 때의 모습

 

 

 작고 여린 보랏빛 꽃송이들이 앞다투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꽃송이들을 살펴보면 너무 여리고 섬세하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꽃이 지면 무시무시한 가시들만 남게 됩니다. 나중에는 시커먼 철퇴로 변해버립니다.

 

 

 

절굿대

모순이 참 많은 꽃

 

절굿대라고 하는 꽃이 있습니다. 절굿대를 검색해보니까 명사로서 절구공이의 잘못이라고 되어있네요 시골에서 자란 저는 절구공이가 무엇이며 어떤 용도로 사용하지는지를 알지만 요즘 애들은 잘 모를수도 있겠지요. 절굿대라고 하는 꽃은 아마도 곡식을 찢을 때 사용하는 절구공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같습니다.

 

절굿대, 참 모순이 많은 꽃입니다. 늦가을 제주의 오름을 오르내리는 중에 가끔씩 풀숲 위로 우뚝 솟은 검은색의 철방망이 비슷한 것을 만나게 됩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가시가 뾰족뾰족하여 여간 사납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여러가지를 상상해 봅니다. 옛날 로마의 검투사들이 사용했던 무기 중에 철퇴라는 것이 있습니다. 쇠줄에 못을 잔뜩 박은 쇠공을 매달아 휘휘 돌리면서 공격을 했지요. 만약 이 쇠공에 머리가 맞으면 머리가 깨지고, 몸에 맞으면 몸이 부서지는 무서운 무기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죄인을 중징계할 때에는 '철퇴를 가한다'라고 했지요.

 

철퇴라는 말을 떠올리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이 참 많이 스쳐지나갑니다. 비리공무원들에게 철퇴를 가해야 한다고 합니다. 매국노들에게 철퇴를 가해야 한다고 합니다. 정치를 잘못하는 정치인들에게는 국민이 철퇴를 안겨 주어야 한다고도 합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데, 철퇴를 가한다는 말은 실제로 철퇴로 때려준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심판과 징벌의 엄중함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어버렸지요. 그러면서 곰곰 생각해 봅니다. 혹시라도 나는 철퇴맞을 짓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데 저는 이 꽃에서 모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꽃이 진 후의 모습은 영락없이 무시무시한 철퇴를 닮았지만, 그러나 식물이 자라며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면 너무도 여리고, 너무도 섬세하고, 그리고 너무도 아름답기만 합니다. 첫째 사진은 꽃이 피기 전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비록 아랫쪽에 보이는 이파리에는 가시가 날카롭지만, 위쪽에 있는 꽃뭉치는 보드랍고 여리기만 합니다. 그리고 둘째 셋째 사진을 보면 다섯 갈래로 나누어진 보라색의 꽃송이들이 촘촘하게 모여 피었습니다. 작고 작은 꽃들이 모여 하나의 꽃뭉치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꽃이 시들고 떨어지면 뒤에 남은 꽃받침대들이 무섭도록 뾰족한 가시로 변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남은 식물은 마르면서 전체적으로 시커멓게 변해 갑니다. 쇠못을 가득 박은 쇠방망이 혹은 철퇴를 닮게 되지요.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예술가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리고 예술가적 기절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남다른 감수성,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고 표현해내는 탁월한 능력, 이런 것을 떠올릴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예술가들만큼 모순이 심한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하는 이 말이 전체가 아니라는 사실도 인정해야겠지요. 예술가들 중에도 원만한 성품에 성숙한 인격자도 많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아름다움을 느끼는 예민함과 섬세함은 항상 방어본능을 요청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속마음이 여린 것만큼 상처받기가 쉽기 때문이겠지요. 보통의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작은 변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다 보니 예술가들 중에는 사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거나 인간관계가 무척 서툰 분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말이나 행동에서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때로는 이해 못할 행동과 말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쏘아보내기도 합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분들의 내면으로 들어가보면 아름다움이 솟아나는 맑은 영혼의 샘물이 있는 줄 압니다.

 

절굿대, 모순이 참 많은 꽃입니다. 피어나는 꽃은 너무도 여리고 섬세하여 쉽게 상처를 받지만, 꽃의 짧은 인생이 끝나면 무서운 철퇴로 변해버립니다. 그리고 찬바람이 휙휙 불어가는 겨울철 산중 풀밭을 꿋꿋하게 버티면서 지키고 서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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