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9 / 버어먼초

풀빛세상 2010. 9. 27. 13:16

  

  

 

버어먼초와 환경

 

이미 두어 주 쯤에 서귀포의 구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버어먼초가 피었는데 사진 찍으러 오라고. 이런 일 저런 일이 겹치면서 차일피일 오늘까지 미루어졌습니다. 그동안 마음으로만 조바심을 치기를, 그동안 다 졌으면 어떡하나. 꽃들이란 때와 시가 있고, 그 순간을 지나면 해를 넘길 수밖에 없는데..... 늦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곳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제주도의 올레길은 워낙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전국적으로 걷는 길이 대유행이 되어 방방곡곡에 여러 이름을 붙인 유사 올레들이 수없이 생겨났습니다. 유명해진다는 것은 좋지만 그러나 유명세라고 하는 값을 치룰 수밖에 없겠지요. 유명세라는 것은 결코 좋은 뜻의 단어가 아닙니다. 유명해졌기 때문에 치루어야 하고 감수해야만 하는 어느 정도의 희생을 뜻하는 말입니다. 올레길이 유명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 찾을수록 자연 환경은 원형을 훼손당하게 됩니다. 이것을 어쩔 수 없겠지요.

 

없는 길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돌담을 헐어 통로를 만들고, 입구에는 안내판까지 세웠습니다. 짐작컨데 원래 이 길은 아는 이만 찾아가는 숨겨진 길인 것 같았습니다. 버섯을 재배하는 사람들이 다녔을까요? 약초꾼들이 찾아다녔을까요? 아니면 주변 목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드나들었을까요? 그런데 시에서 예산을 세우고 공사를 하여 시민들을 위한 산책길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정식 올레길은 아니지만 유사 올레길, 갑자기 유행처럼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산책길.

 

문제는, 입구 부근에서 그것도 길 옆에서 버어먼초를 만났습니다. 평소에 보기 힘드는 여러 식물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꺼내어 한 컷 두 컷 정성스럽게 찍으면서도 걱정이 계속 밀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면 예민하여 숲속 그늘에 숨어있는 이것들이 밟히게 될 것인데. 여리고 여린 이것들이 언제까지 여기를 지킬 수 있을까? 아마 수년이 지나지 않아서 사라지게 될텐데.....

 

누군가 길을 만들고, 길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길을 오가면서 쉼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쉼을 얻으려고 하면 할수록 자연 속의 식물들은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평화와 공존의 방법은 없을까요?

 

참, 제 말만 하느라고 버어먼초에 대해서 설명을 빠뜨렸습니다. 낙엽들이 쌓여 썩어가는 습기찬 그늘에서 자라는 부생식물입니다. 정말 여린 것이 잘 살펴보면 하얀 병아리가 뿅뿅 소리를 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버어먼초....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