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5/ 무지개

풀빛세상 2010. 9. 27. 13:01

 

 

 

 

풀꽃들의 이야기, 오늘은 무지개를 보내어 드리겠습니다. 어제 일요일 늦은 오후, 작은 아들을 옆자리에 태우고 바닷가 해안도로 쪽으로 내달렸습니다. 하늘은 온통 흐릿하고, 시커먼 구름들이 몰려왔다가 몰려가는 가운데, 수평선 위에서 천천히 내려오던 해가 어느 순간 쑤욱 바다속으로 숨어버립니다. 길지 않은 이 짧은 순간에 셔터를 계속 눌러보았습니다.

 

아빠, 무지개가 떳어요.

어디?

저기요.

처음에는 흐릿하던 무지개가 점점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하늘 중간에는 구름으로 끊어졌지만, 저쪽 언덕 위로 또 하나의 무지개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어릴적 교과서에서 읽었던 김동리의 무지개라는 단편소설이 떠오릅니다. 이제 세월이 오래 되어 그 내용들은 거의 잊어버렸지만, 무지개를 찾아서 길을 떠나는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서 꿈과 희망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중간에 기왓장과 같은 허접한 물건들을 들고 돌아오면서 이것이 무지개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소년은 진짜 무지개, 하늘에 떠 있는 찬란한 무지개를 찾겠다고 계속 길을 갔다는 내용만 떠오를 뿐, 그 결말에 대해서는 더 이상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도 한 때는 소년이었습니다. 그 때는 모든 세상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훗날 언젠가는 무지개를 잡을 수 있으리라는 꿈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아직도 소년의 마음이 없어진 것은 아닐지 몰라도, 세상은 더 이상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더 이상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철이 든 것만큼 세상은 재미가 없어지게 되었다고 말해야 하겠지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뭔가 물어보아도 퉁명스럽기만 하고, 자기들 필요한 것 이외에는 요구할 줄도 모르고, 그렇지만 친구들과 만나면 낄낄거리며 온갖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아빠가 들어도 무슨 말인지, 무슨 내용인지 파악도 안됩니다만.

 

아들들도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꿈을 꾸고 있을까요? 아빠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그네들 속에는 뭔가 비밀스러운 꿈들이 숨겨져 있겠지요. 열심히 무지개를 담고 있는 아빠를 보면서 무얼 생각했을까요? 곁눈질을 해 보았습니다. 아들의 얼굴에서는 심심하다는 표정만 읽어집니다. 아들, 이제는 아들을 통해서 아빠의 꿈을 꾸게 보게 됩니다. 아들아, 건강하게 자라다오.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야 한단다. 너희들이 아빠 나이가 되었을 때에는, 지금의 아빠보다 더 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