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4/ 여로

풀빛세상 2010. 9. 27. 12:56

 

 

 

 

'여로'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면 무엇을 떠올리게 됩니까? 한자를 모르는 요즘 세대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한자세대에 속하는 저는 당장 '여행하는 길' 혹은 '나그네'를 떠올리게 됩니다. 옛글로 '여로(旅路)에 고생이 자심하십니다'라고 하면, 여행길에 수고가 참 많으십니다. 이런 뜻이 되겠지요. 인터넷 사전으로 검색해 보니까 '여행하는 길. 또는 나그네가 가는 길'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 제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요즘은 이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쉬운 글과 단어들을 사용해야 하겠지요.

 

그와 함께 저는 어릴적 어머니와 누나가 즐겨 보았던 여로라고 하는 드라마가 생각납니다. 너무 오래되어 어렴풋하게 되어버린 기억을 더듬으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까 1972년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다고 하니 제가 중학교 1학년쯤 된 것 같으네요. 그때는 흑백 텔레비전도 귀하던 시절이라 저의 마을에도 몇 대가 없었습니다. 여로가 방영되는 저녁만 되면 어머니도 누나도 일거리를 들고 텔레비전이 있는 앞집으로 몰려갔습니다. 그러면 그곳은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의 쉼터가 되었지요. 자꾸 옛날,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떠나 온 고향, 지금은 난개발로 원형을 잃어버려 다시 돌아갈 곳도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현대인들은 고향을 잃은 나그네 인생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여로라고 하는 꽃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수십 종이 있지만, 한국에는 10 여 종이 있으며 맹독성으로 살충제의 원료 및 약제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요즘은 독성이 강한 화학살충제들이 많기 때문에 궂이 자연에서 찾으려 하지 않겠지만, 옛날에는 자연 속에 있는 풀들을 최대한 사용했었지요.

 

이 꽃들은 습하고 컴컴한 숲 속 그늘진 곳에서 만났습니다. 그나마 찍어올리는 사진들은 나무틈새로 햇살이 약간 내려오는 곳에 있는 것들입니다. 색감은 짙은 흑갈색으로, 자연상태에서 보면 침침하기만 했는데, 약간의 햇살이라도 받고, 접사렌즈로 정밀하게 담아와서 보니까 매혹적인 색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는, 한 때 이런 색감의 빌로드 천이라고 하는 것이 유행했던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단이라고도 했던 것 같고요. 요즘으로 하면 보들보들한 융이라고 하면 될까요? 오래 되고, 또 어렸던 시절이라 정확한 것은 모르겠습니다만, 이때 그 천의 색감이 지금 제가 보고 있는 여로의 꽃색갈과 비슷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꽃 하나에도 많은 생각이 스쳐갑니다. 주로 삶의 경험과 어릴적의 추억들이 주가 되겠습니다만,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면서 잠시나마 우리의 정신세계에 여유로움을 더해봅니다. 풀빛세상이란 과거의 추억이면서도 동시에 미래를 향하는 소박한 우리의 발걸음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