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들

살아가는 이야기 13 / 폐가

풀빛세상 2015. 6. 23. 19:49



며칠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큰아들이 아빠에게 퉁명하게 한 마디 툭 내쏘았습니다.

아빠가 가르치는 것은 재미도 없고 들을 것도 없고. 

많은 시간을 들여서 성경의 글자 한 자,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풀기도 하고 짜기도 하면서 

가르친다고 나름 애를 쓰고 있는데, 아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마음에 적잖이 섭섭함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대구에서 교회를 섬기고 있었을 때 알게 되었던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에 걸려 두 다리의 근육이 소실되어버렸지요. 

이동할 때에는 양 겨드랑이에 목발을 끼우고 한 발 두 발 재겨 디디며 몇 걸음씩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성실하게 양복 기술을 배워 시내 중심가에 양복점을 내었지요.  

주변의 사장님들이 단골이 되어 옷을 맞추어 입는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가게를 겸하는 집도 장만하고, 아들 둘을 낳아 잘 키웠지요. 

어느 듯 세월이 흘러 큰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장가 갈 때 멋지게 양복을 만들어 입혔겠네요.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세상에, 아버지가 양복 일류 기술자인데, 

 그런데 말입니다. 백화점에 가서 기성복 사 입지 않았겠습니까. 

 요즘은 기성복도 원체 잘 나오니... 

끝말을 흐리며 씁쓸하게 웃는 그분의 웃음만큼이나 세상은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아들이라도 아버지를 인정해 주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지요.

그분과 헤어지고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아직도 단골 손님들을 위해서 옷을 만들고 있을까요. 


가끔씩 오래 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을 고향인 시골마을에서 농사 지으며 살다가 돌아가셨지요. 

세상은 변해갔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지게를 지고 계단논을 힘들게 오르셨고, 

튼실하게 키운 암소에 멍에를 올려 쟁기갈이로 농사를 지으시며 자녀들을 키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손때가 묻었던 흙집은 사라졌고, 농기구들 역시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녀들은 모두 객지로 뿔뿔히 흩어져 일년에 한두 번 아버지의 무덤을 찾는 것으로 효도를 대신할 뿐이지요. 

이제 아버지의 아들이 또 다른 한 명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무엇인가 이룰 수 있으리라는 꿈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세월만 흘려 보낸 것 같네요. 

벌써 아들들이 자라 대학생이 되고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네들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무엇일까요.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할 그 무엇과도 같은 것일까요. 

마을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폐가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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