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들

어머니

풀빛세상 2013. 11. 15. 17:38

 

 

아흔두 살의 할머니가 되었다.

증손자까지 보셨으니 만수무강하신 셈이요

아직도 정신이 말짱하시고

시간이 나면 돋보기 쓰고 더듬거리며 성경을 읽으신다.

 

자식은 엄마 생각

엄마는 자식 생각

멀리 떨어져 계셔서 자주 뵙지도 못하고... 일년에 겨우 몇 번, 

불효도 이런 불효는 없을 것이다.

열여섯의 나이로 시집을 와서 한 평생 살았는데

이제 토지공사에서 마을을 몽땅 수용해서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겠단다.

평생 시골의 흙을 만지면서 살았는데

앞으로 무슨 재미로 사실지 걱정이다.

자식들 집에 와 살자고 하지만

메마른 도시 생활에서 며칠을 견디지 못하시고

나 집에 갈란다 팔팔 날아가신다.

 

엄마, 누나집에서 오라고 하는데 가실라요?

그래 가자... 땀흘려 농사 지으신

깨 한 봉지, 고추 가루 한 봉지, 들깨잎 무친 거.....

아들에게도 한 가방, 딸에게도 한 가방.....

엄마, 이런 거 그만 담아요. 들고 가기도 번거럽고....

안 주셔도 되요.....

야~ 엄마 마음은 안 그렇다. 뭣이든지 들고 가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스마트폰으로 몇 컷 찍은 후

누나네 집으로 가는 청주행 시외버스 태워드리고 헤어졌다.

아들은 비행기 타고 멀리로 가야 한다.

 

'살아가는 이야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놈   (0) 2013.12.05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0) 2013.11.29
제주 4.3의 기억   (0) 2013.11.17
김영갑 갤러리  (0) 2013.09.12
책 두 권 구입하다   (0) 2013.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