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속의 이야기

풍경 속의 이야기 2 /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풀빛세상 2011. 1. 22. 13:22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저기가는 저 사람 조심하세요.
우물쭈물 하다가는 큰일납니다.

 

아주 오래 전에 많이 불렀던 동요입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불려지고 있겠지요. 60년대 말이었겠지요. 시골의 작은 교실에 빼곡히 앉은 아이들은 선생님의 풍금소리에 맞추어 입을 짝짝 벌리면서 힘차게 불렀습니다. 음악책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어린이의 모습과 그 앞에서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길을 가는 할머니의 모습도 있었지요. 어린이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할머니 조심하세요. 자전거가 지나갑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상은 참 많이 변했지요. 뉴스를 들으니 현재 제주도에는 인구대비 자동차 보급율이 2:1 이 넘었답니다. 어린아이와 청소년과 그리고 노인인구를 뺀다면, 평균적으로 어른 1인당 자동차 한 대씩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이렇게 삭막한 세상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동화와 동요의 세계를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가난했던 그 시절의 불편함에 아련한 향수를 느끼면서요.

 

눈이 몹시도 많이 내렸던 날이었습니다. 놀이터 한 귀퉁이에 아이의 작은 세발 자전거가 놓여있었습니다. 아마도 어느 집 서너살박이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놀다 간 흔적이겠지요. 아이는 집으로 들어갔지만 자전거는 풍경 속의 또 다른 풍경이 되어 자리를 지키고 앉았습니다. 다시 아이가 찾아와서 놀기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영하의 찬 날씨였겠지만 저 풍경만을 보노라면 참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오늘도 저는 춥지만 춥지 않은 듯,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듯한 저 풍경을 마음에 담아봅니다.

 

세상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참 많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오래 전 고향에서 우연한 기회에 지역의 화가 두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두 분은 친구이면서도 서로 너무나 많이 달랐습니다. 한 분은 까무잡잡하고 마른 몸에 건강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림은 왠지 칙칙하고 무거우면서도 여러가지 고뇌를 담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인상 좋은 동네 아저씨와 같이 벙글벙글 웃음을 머금고 있었으며, 그림은 환하게 밝았고 동심의 풍경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만약 두 분이 저 풍경을 보노라면 무엇을 느끼며 어떻게 표현해 낼까요?

 

어제 저녁부터 뉴스 매체들은 일제히 소말리아 해적들을 소탕하고 인질로 잡혔던 배와 선원들을 모두 무사히 구출했다는 속보를 반복해서 전해주었습니다. 모두들 참 장한 대한의 아들들이 큰 일을 이루었다고 자랑하는 듯 하지만, 저의 마음 한 구석에는 그늘짐이 드리웠습니다.

 

소말리아 해적들을 절대로 동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면에 숨어있는 씁쓸한 현실이 무겁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네들도 마을의 착한 아들들이요 청년들이었는데요, 그네들을 몰아가는 팍팍한 현실이 해적이라는 옷을 입혔겠지요. 소말리아 해적의 뒤에는 이들을 부추켜서 돈을 착취하는 거대한 국제조직이 있다고 합니다. 해적질을 하도록 부추기고, 이들에게 정보와 총을 제공하며, 인질로 붙들려온 사람들을 위한답시고 협상테이블을 만들어 몸값 올리기와 중계료를 뜯어가는 국제 브로커들과 여러 범죄 조직들..... 그리고 그네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점차 인간성을 빼앗기며 서서히 악으로 물들어가는 저 아프리카 가난하고도 소박한 마을의 검은 청년들. 그리고 그들을 두려워하면서 오늘도 내일도 조심조심 크고도 너른 바다를 항해하는 각종 배들, 자유로운 바다에서 살면서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대양(大洋)의 문어들을 떠올려봅니다.

 

소말리아 그 작고도 소박한 마을에도 어린이의 세발자전거가 있을까요?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손잡고, 놀이터에서 하루의 일을 끝내고 고단하지만 밝은 얼굴로 집으로 돌아올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밝은 세상의 어두움과 어두운 세상의 밝음, 양지 바른 곳의 그늘짐도 함께 찾아보는 풀빛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