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이야기

풀꽃이야기 176 / 한라천마

풀빛세상 2014. 9. 11. 17:34

 

 

 

 

 

 

4년인지 5년인지 여하튼 오랫동안 기다리며 찾아 다녔습니다. 그렇지만 이 쬐그만 숲속의 꼬마는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까탈스러운지요. 구애라고 한다면 지독스러운 구애라고 해야겠지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의 애를 태우고 또 태웠겠지요. 드디어 만났습니다. 반갑다는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정신없이 누르고 또 눌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흥분이랄까, 감동이랄까, 이런 감정들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올해는 출사를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숲속의 많은 신비한 꽃들이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그네들이 무척 부럽기만 했습니다.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어 가까운 곳이라면 다닐 수 있겠다 싶어 꽃친구들에게 은근슬쩍 문자 메시지를 보내었지요. 겉으로는 안부를 물으면서 속으로는 어디 나 좀 데려갈 데 없어라는 암시를 하고 있지요. 한 친구는 한라산 백록담 가까운 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시간이 흘러 또 다른 전화가 왔습니다. '오후에 나갈 수 있어요? 한라천마 보러 가게요.'

얼마나 기다렸던 전화였던지요. 냉큼, '갈 수 있어요.'  

이미 몇 번을 다녀왔다면서도 굳이 소원 풀어 주겠다고 먼 곳에 있는 어둠침침한 그 숲속으로 안내를 했습니다. 이럴 때 친구 좋은 게 뭐냐는 말이 나오는가 봅니다.

 

한라천마라고 합니다. 초희귀종이지요. 남쪽 섬나라 특정 지역의 작은 숲 그늘에서만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 영역도 무척 작아 한 바퀴 빙 돌아도 오분이 걸리지 않는 아주 작은 영역에서만 자라고 있습니다. 크기는요? 높이가 2~3Cm 정도나 될까요? 어둠침침한 숲 그늘 아래 연한 녹색을 띠고 있어 쉽게 보이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쪼그려 앉아 찾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분명히 있었는데 없어졌네. 누가 손을 댔는가? 가만 가만 살펴보니 한 개체는 이미 까맣게 변하여 시들어 있었습니다. 너무 예민한 녀석이네요.

 

피는 시기가 일정하지 않고, 개체수도 많지 않습니다.

작년에는 겨우 하나가 솟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해마다 찾아가도 허탕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로는 허무하지만, 그러면서도 투지가 솟구치기도 합니다. 내년에는 꼭 만나리라. 내년에 못 만나면 후내년이라도..... 언젠가는 만나고 말리라. 제발 없어졌다는 말만은 들리지 말아다오. 이것이 나와 많은 이들의 공통된 마음이겠지요.

 

아, 여기에 있네요. 여기요. 눈앞에 있어도 못찾겠네.

조심 조심 걸어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밟아버리겠어.

한 마디씩 두런거린 후 땅에 완전히 엎드려 카메라를 땅바닥에 붙이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작은 녀석입니다. 숲속의 외계인 같기도 하고, 뭔지 모르지만  괴물처럼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말도 카메라로 찍은 후 컴퓨터 모니터로 볼 때 이야기이지요. 숲속에서는 이런  모습이 확인되지도 않습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 오르네요.

짧은 하루가 참 행복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