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의 짧은 이야기

짧은이야기 88 / 노랑먹물버섯

풀빛세상 2013. 9. 24. 09:40

 

 

 

  

 

어느듯 해가 짧아져 저녁 여섯 시면 해그림자가 길게 늘어서게 됩니다.

집에 가야지.....

교회 마당의 흙바닥에 뭔가 꼼질꼼질 돋아나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두리번 두리번 호기심 가득한 듯

그네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세상 구경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노랑먹물버섯이라고 합니다.

키높이는 겨우 3cm 정도이니 새끼 손가락의 마디 하나쯤 될 것 같네요.

뿌리 부분에 노랑먹물이 있어서 노랑먹물버섯이라는 이름을 얻었고요

이렇게 싱싱할 때에는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만 .....

 

 

 

저녁에 세상에 나와 밤 사이에 갓을 활짝 벌리고 포자생성까지 마친 후

해 떠오르는 아침이 되면 시들고 녹아버려 모습을 감추어 버린답니다.

 

 

 

어때요 우리 사이 참 다정해 보이지요

밤새껏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사랑하며 한 생애를 살아갈 것입니다.  

 

 

 

이른 아침이 되었습니다.

새벽잠에서 깨어난 세상이 소란스러울 때 

우리의 사랑은 끝이나고

영원한 잠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짧고 짧은 한  세상, 새하얀 달빛 아래서 우리의 사랑은 참으로 아름다웠답니다.

아무도 보는 이 없었어도 

풀벌레들의 노래소리가 우리들의 사랑을 축복해 주었지요.

 

 

 

 

이제는 돌아가야할 시간이네요.

- 인생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찌라 -

매년 재의 수요일이 돌아오면 우리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게 됩니다.

 

서로를 기대면서 마지막 춤을 추고 싶네요.

달빛 아래 우리의 사랑은 아름다웠노라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도 눈웃음으로 웃으며 마지막 우리의 춤을 추고 싶네요.

하늘을 향해서, 하늘의 그분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