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속의 이야기

풍경속의 이야기 19 / 아버지 학교

풀빛세상 2012. 10. 22. 10:42

 

  

 

아버지학교를 섬기는 분이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부탁을 해 왔습니다.

실력도 미천하고 장비도 부족하고 또 토요일 저녁이기 때문에 부담이 되었지만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겠지요. 오후 4시부터 시작하여 10시까지 진행되는 프로그램 중에서 절반의 시간이 지난 후에 가까스로 찾아가서 어색함을 누르고 부지런히 셔터를 눌렀습니다.

 

 

나도 예전에는 아버지의 아들이었지만

지금은 아들의 아버지가 되어 있습니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아버지가 생각이 납니다.

 

정말 오래 전, 부마항쟁 당시에 대학생이었지요.

정보기관에서는 대학생 한 명 한 명에 대해서 정보사찰을 했던 것 같습니다.

시골 마을의 구멍가게를 찾아온 정보요원이 물어보았겠지요.

저 댁은 어떤 집입니까? 부친은 어떤 분입니까?

가게 주인이 단 한 마디 던져주자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가 버렸다고 하네요.

그 애 아버지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분입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저의 아버지였지요.

손해를 볼지언정 절대로 손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앞에서 울지 못하고 뒤돌아 서서 눈물 몇 방울 떨구는 사람,

그분이 저의 아버지였습니다.

평생 좁다란 고향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농사만 짓다가 생을 마감하신 분이지요.

작은 몸집에 건강하지도 못한 분이 평생 지게를 지고 살았으니 남모를 고달픔이 심했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무능했기에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했지요.

저는 그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의 아들이 아빠에게 물어왔습니다.

아빠, 아빠는 OOO 모임에서 O회장도  부회장도 하고 그렇게 하지 않나요?

아들의 눈에는 여태껏 감투를 써지 못하는 아빠가 이상했던 것 같습니다.

씩 웃으면서 속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지요.

아들아, 아빠는 그런 일에는 관심도 없고 능력도 안 된단다......

 

가끔씩은 아들들에게 미안할 때가 있지요

좋은 롤모델이 되어야 할텐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늬들에게는 세상에서 지도자의 삶을 살라고 말하면서도

아빠는 그런 세상의 삶을 절반쯤은 회피하면서 살고 있거든....

늬들도 먼 훗날 아빠를 생각하면서 아빠의 세계를 이해해주면 좋겠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 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싶은 사람이다.

-나도 아들들에게 이런 아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