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속의 이야기

구름 속의 산행

풀빛세상 2019. 7. 26. 00:12






오래간만에 한라산에 올랐다. 감히 정상으로 향할 힘과 용기가 없어 손쉬운 영실코스로 방향을 정했다. 더 절실한 이유는 꽃들을 만나야만 했다.

멀지 않은 산, 그런데 왜 한 번 찾기가 어려울까. 가야지, 이번에는 꼭 다녀와야지 벼르고 별러도 발걸음 한 번 옮기기가 쉽지 않다. 굳이 시간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없었으니. 작년 봄, 철쭉을 만날 수 있을까 충동적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입구에는 차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아쉬운 마음만 안고 돌아섰다.

지난 가을, 먼 산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견딜 수 없어 한숨에 내달렸지만 그날도 길은 막혔다. 어떻게 하든지 단풍을 만나고 오리라.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용기 있게 걸음을 재촉했다. 2.5km를 걸어가야 겨우 산의 입구에 닿을 수 있었다. 혼자서 타박타박 걷는 길에 몸이 먼저 지쳐버렸다. 병풍바위가 보이는 중간쯤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해가 바뀌었다. 하늘 아래 봉긋하게 솟은 봉우리를 올려다보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하얗게 쌓였던 눈이 녹고, 침침한 회갈색이 연두색으로,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산의 중턱에는 산벚꽃의 그림자가 하얗게 어리기도 했다.

꽃들이 기다릴 텐데. 이른 봄에 피는 세잎양지꽃은 짙은 노란색이다. 세바람꽃은 제주도 특산종이다. 1,600고지에 올라가면 야생의 함박꽃을 만날 수 있다. 하얀 꽃과 함께 맑은 향이 지나가는 이의 정신을 맑게 한다. 노랑제비꽃도 피었을 텐데.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꽃들이 피고 지는데 나는 그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다.

가야지. 내일이면 갈 수 있을까. 이번 주에는, 이번 달에는. 속절없이 세월만 흘렀고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잠시 짬을 낼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아내에게 말했다. 내일은 한라산 다녀와야겠다고. 아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어서 다녀오라고 했다.

배낭에 카메라와 접사 렌즈 몇 개, 만일을 대비해서 비옷도 챙겼다. 커피 한 캔, 물 한 병, 간단한 간식이면 된다.

짬을 낸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짬이라는 말은 어쩌면 짜다는 단어의 명사형이 아닐까라고 중얼거려본다. 젖은 옷을 비틀고 쥐어짜면서 한 방울의 남은 물기를 훔치듯 시간을 짜고 또 짜고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작은 여유를 짬이라고 할까. 혼자만의 생각이다.

아랫동네는 태양빛이 이글거리는 계절, 그러나 산 입구에서부터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안개가 촉촉 몸을 적신다. 사람들은 구름 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저 앞서 가는 이들은 흐릿한 그림자로 어른거린다. 뒤에서 보면 나 역시 그러하리라. 릴케의 시를 떠올려본다.

 

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 숲이며 돌은 저마다 외로움에 잠기고/ 나무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다 혼자다

 

사람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외줄기 산길을 걷고 있었다. 가끔씩 도란거리기도 하지만 목소리는 안개에 젖어버린다. 왠지 조용하고, 쓸쓸하고, 그러면서도 포근한 산행길이다. 중턱을 넘어서면서 가는 빗줄기가 얼굴을 적신다. 아무도 불평이 없다. 병풍바위도, 오백장군도 볼 수 없지만 구름 속을 걷고, 안개비에 젖는다는 그 자체로 얼굴에는 행복이 어린다.

주변을 살피며 두리번거렸지만 7월은 꽃들의 계절은 아니다. 그래도 만나야할 꽃들이 있다. 이미 아랫동네에서는 철이 지난 산수국의 색이 유난히 짙다. 비비추도 보인다. 조릿대 사이로 우뚝 솟은 말나리가 당당하다. 백리향이 바닥에 깔렸다. 옛날 짚신을 신고 산행을 하다가 밟으면 그 향이 백리까지 따라갔다는 유래가 있다. 높은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구름떡쑥은 아직 시기가 이르다. 그 외에도 갖가지 사연을 품은 맑고 고운 영혼들을 만났다.

언제 다시 그 길을 오를 수 있을까. 눈에 선한 그 아이들의 따뜻한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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