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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동백꽃

하늘이 잔뜩 찌푸렸다. 낮게 깔린 하늘은 인상 팍팍쓰며 아무런 말이 없는데 공연히 나만 두려움에 떨고 있는 걸까. 낮불을 밝혀 꼬물거리는 글자와 함께 들앉은 작은 방이 나의 우주 나의 세상이 된다. 하늘은 높고 넓고 어떤 이는 무한이라 어떤 이는 영원이라고 하더라만 나의 잰걸음으로는 한 뼘도 다녀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이 슬퍼해야겠다. 나는 땅 위의 존재, 땅의 먼지라고 배웠다만 어쩌면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에 묻은 거뭇한 흔적일지도 몰라. 거 있잖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말이. 그 전에 할 일이 있을거라며 얼마나 두리번거렸는지 몰라. 하늘은 높고 땅은 넓고 해 뜨는 곳은 분명 저기인데 난 찬 겨울의 땅에 누운 붉은 동백꽃 한 잎이더라.

별도봉

별도봉 산책 아무도 아는 체 하지 않는다 아는 이도 없다 혹 아는 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마스크로 가리고 모자로 푹 눌렀으니 알아 볼 수 없겠다만 그나마 정말이지 모두 낯설기만 하다 멀뚱히 눈 한 번 마주치고 땅바닥을 향하며 별도봉 산책길을 오르고 내린다 참 희한하지 별도봉이라 길이 다르다는 뜻일까 가는 방향이 다르다는 뜻일까 아니 같은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란히 걷는다 할지라도 우린 각자의 길을 갈뿐 그래서 우린 편안하였고 행복하였다 아직은 꽃소식이 없다 삼월의 첫날 날씨는 축축하고 하늘은 잿빛 누가 춘삼월 꽃피는 계절이라고 했을까 파릇거리는 쑥만 고개를 내밀고 두리번거리는 걸 그래 기다리자 세월이 가면 이 동산에도 노란 개구리갓 꽃동산이 되려니 곳곳에 산자고도 귀티를 드러내리라 생각이라는 것은 슬픈..